항목 ID | GC05201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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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渭昌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위창(金渭昌)[1900~1941]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처음 송내동 교회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교회의 권수백 조사는 사촌동의 김태호 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같은 동네 김위창을 비롯 김점득·김유경·김수석·김기호·김구종 등과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18일 9시경 점곡면의 중앙 통로인 사촌동 앞길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19일에도 아침부터 시위는 계속되었는데, 여기에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내동의 김해 김씨 등 주변 마을 사람들이 합세하여 전개하였다. 시위는 이튿날 새벽 1시경까지 지속되었으나 일본 경찰의 발포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김위창은 시위에 참여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7일 대구 지방 법원 의성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 명목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0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