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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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凞碩 |
이칭/별칭 | 강희석(姜熙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강희석(姜凞碩)[1881~1939]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던 중, 38세의 나이로 안평면 석탑리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군 안평면 석탑동 교회 교인이었던 강희석은 송내동 교회 권수백(權秀伯) 조사(助事)의 권유로 같은 교회 교인 김복식(金福植)·정금동(丁今同) 등과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하여, 3월 16일 밤 교인 및 동민 30여 명과 함께 마을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17일 밤에도 한차례 시위를 벌였다. 이 때 이들은 안평면의 만세 시위에 이어, 점곡면의 송내동 교회와도 연대를 이루며 만세 운동을 계획했다.
강희석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7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 명목으로 징역 4월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