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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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允諴 |
이칭/별칭 | 사순(士純),송고(松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전기 의성 사촌 지역으로 이주한 박남 박씨의 입향조.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사순(士純), 호는 송고(松皐). 박병덕(朴秉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충좌위 부사맹(忠佐衛 副司猛) 박자(朴礠)이고 아버지는 돈용교위 사용(敦勇校尉 司勇) 박서(朴瑞)이고, 어머니는 이현손(李賢孫)의 딸 전의 이씨(全義 李氏)이고, 부인은 훈도(訓導) 김만경(金萬敬)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활동 사항]
박윤함(朴允諴)[1510~1594]은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사사하여, 퇴계의 고제(高弟)로 칭송되었다. 학식이 매우 넓고 글을 잘 지어서 고을에 칭송이 높았으며, 향시(鄕試)[성시(省試)]에서도 높은 성적을 올렸다. 동생 박윤성(朴允誠)과 함께 경향(京鄕)의 석학[홍석(鴻碩)]들과 교유하였는데, 성균관의 『화부동유록(花府同遊錄)』에 기록되어 있다.
만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분(悲憤)하여 아들 박항(朴恒), 박협(朴協)과 손자 박태광(朴泰光)에게 화왕산(火旺山)에 가서 곽재우(郭再佑)을 돕게 하였다. 여기에 감탄한 많은 장정들이 뒤를 이어 출진하였다. 1590년(선조 23) 81세의 나이로 기로소(耆老所)에 올라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제수되었고, 1594년(선조 27)에 죽었다. 차남 박항이 박윤함의 탈상(脫喪)이 있던 1596년(선조 29)에 부인 의성 김씨(義城金氏)의 처가가 있는 의성의 사촌(沙村)으로 은거(隱居)하였다. 이후 의성 사촌 반남 박씨의 입향조(入鄕祖)로 받들어졌다.
[묘소]
『금파집』에 의하면,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노리] 권씨 문중[안동 권씨 마감 문중]의 묘 위쪽에 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 1리에 있던 월록 서당(月麓 書堂)을 1896년 농민 봉기 때 소실된 것을 개축하고 박윤함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의 공의에 의해 송고정(松皐亭)이라 개판(改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