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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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寬 |
이칭/별칭 | 이율(而栗),역락재(亦樂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69년 12월 24일 - 김치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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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61년 2월 17일 - 김치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26년 - 김치관 개곡사에 배향 |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2리[중사촌]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2리[중사촌] |
수학|강학지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 2리[남산] |
수학|강학지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동락 서원[부지암 정사]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토읍곡(土邑谷) 수봉산(守鳳山) 남록(南麓) 곤향(坤向) |
사당|배향지 | 개곡사(開谷祠)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의성(義城) |
대표 관직|경력 | 호군(護軍)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이율(而栗), 호는 역락재(亦樂齋). 부사맹(副司猛) 김만정(金萬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 김처선(金處善)이고, 아버지 김응주(金應周)이며, 부인은 의령 옥씨(宜寧玉氏) 옥구(玉球)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치관(金致寬)[1569~1661]은 9세 때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03년(선조 36)에는 남산[의성군 비안면 용남 2리]에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이때 스스로 호를 ‘역락재’라 하였다. 전쟁의 비참함과 친족들의 순절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마음이 오직 학문을 궁구하는 데에서 모든 즐거움이 있고 그러한 가운데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다고 보고 지은 것이다.
1630년(인조 8)에 학행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많은 선비들이 몰려와 청하기에 사리서사(士里書舍)에서 경전을 강의하였다. 1631년 의성 향교에서 향음주례를 행한 후에 오경(五經)을 가르치는 등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후진 양성과 학문 정진에 몰두하였다. 1632년에는 빙계 서원(氷溪 書院) 동주(洞主)로서 석채례(釋菜禮)를 행한 후 강회(講會)를 개최하였다. 1641년 의성 현령 허후(許厚)가 그의 독실한 학행과 효행에 대하여 경상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였는데, 이후에 부임한 현령들도 같은 보고를 하였다.
1650년(효종 1)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1653년(효종 4)에는 호군(護軍)의 벼슬을 받았다. 1655년(효종 6) 흩어져 있는 족인(族人)들의 보첩(譜帖)을 수집 정리하고, 1656년(효종 7)현지(縣誌)를 고람(考覽)하고, 선묘(先墓)를 봉심(奉審)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8세손 김필화(金弼華)가 편찬한 4권 2책의 『역락재 선생 문집(亦樂齋 先生 文集)』이 전하며, 문집 가운데 주목할 작품으로 『주역(周易)』을 도설(圖說)로 설명한 「역도서(易圖書)」와 의병 활동을 펼쳤던 종형(從兄) 김치중(金致中)이 건마산(乾馬山)에서 자결한 내용을 소상히 기록한 「종형 건마산 사절 시사(從兄 乾馬山 死節 時事)」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에 있는 개곡사(開谷祠)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