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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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禹光績 |
이칭/별칭 | 문숙(文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24년 - 우광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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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51년 - 우광적 별시 무과 병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59년 - 우광적 선전관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59년 - 우광적 훈련원 주부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62년 - 우광적 훈련원 판관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66년 - 우광적 별해 첨사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82년 - 우광적 칠원 현감에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683년 - 우광적 사망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
부임|활동지 | 칠원 현감 - 경상남도 함안군 |
묘소|단소 | 안정현 상동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단양(丹陽) |
대표 관직 | 칠원 현감 |
[정의]
조선 후기 비안현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문숙(文叔).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우희현(禹希賢), 어머니는 호군(護軍) 정응정(鄭應精)의 딸 연일 정씨(延日 鄭氏)와 첨추(僉樞) 정침(鄭琛)의 딸 연일 정씨이며,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역임한 우선규(禹善圭), 증조할아버지는 통례원 인의(通禮院 引義)를 역임했으며 경상도 비안현 입향조인 우홍서(禹弘緖), 부인은 통정(通政) 전득세(全得世)의 딸 용궁 전씨(龍宮 全氏)로 알려져 있다. 우광적의 가계는 증조할아버지 우홍서 이래 현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일대[조선 시대까지 비안현]에 세거하였다.
[활동 사항]
우광적(禹光績)[1624~1683]의 생애에 대해서는 유필영(柳必永)[1841~1924]의 문집인 『서파집(西坡集)』에 수록되어 있는데, 「통훈대부행칠원현감겸김해진관병마절제도위우공묘갈명(通訓大夫行漆原縣監兼金海鎭管兵馬節制都尉禹公墓碣銘)」을 통해 간략히 살펴 볼 수 있다. 우광적은 1624년(인조 2)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우가 재기를 갖추고 있었으며, 성품이 충직했다고 한다. 특히 병서(兵書)를 즐겨 읽었으며, 도략(韜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651년(효종 2) 무과 별시 병과로 급제하며 여러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우선 1659년(효종 10) 선전관(宣傳官), 곧바로 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 이어 수문장(守門將), 1662년(현종 3)에는 훈련원 판관(訓鍊院 判官)이 되었다. 첨사(僉使)로 있던 1662년 7월 27일에는 현종이 우광적에게 궁시(弓矢)를 하사하라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기도 했다.
1664년(현종 5) 사절을 따라 청나라 북경에 다녀왔으며, 1666년(현종 7) 별해 첨사(別害 僉使)에 제수되어 여러 요새를 두루 다녔으나, 벼슬길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고 한다. 1682년(숙종 8) 칠원 현감(漆原 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1683년(숙종 9) 3월 23일 문경(聞慶)의 여사(旅舍)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묘소]
묘갈명에는 안정현 상동(上洞)[현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에 묘소가 자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