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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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興祖 |
이칭/별칭 | 창숙(昌叔),만와(晩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용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765년 - 손흥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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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92년 - 손흥조 생원시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04년 - 손흥조 문과 춘당대시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04년 - 손흥조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24년 - 손흥조 성균관 전적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25년 - 손흥조 조경묘 영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825년 - 손흥조 사간원 정언에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832년 - 손흥조 사망 |
거주|이주지 | 상주목 단밀현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
수학지 | 성균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
묘소|단소 | 선산 청화산 - 경상북도 구미시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비안(比安) |
대표 관직 | 사간원 정언 |
[정의]
[가계]
본관은 비안(比安)[병산(屛山)], 자는 창숙(昌叔), 호는 만와(晩窩)이다. 아버지는 손익진(孫翼振), 어머니는 이창국(李昌國)의 딸 진성 이씨(眞城 李氏), 할아버지는 손치(孫緻), 증조할아버지는 손명삼(孫命三), 부인은 김우빈(金禹彬)의 딸 숙인(淑人)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알려져 있다.
[활동 사항]
손흥조(孫興祖)[1765~1832]는 1765년(영조 41) 6월 10일 출생하였다. 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용연리에 거주하였는데, 조선 시대까지 이곳은 경상도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이었다. 손흥조의 생애에 대해서는 유주목(柳疇睦)의 문집인 『계당집(溪堂集)』 수록, 「사간원정언만와손공행장(司諫院正言晩窩孫公行狀)」을 통해 간략히 살펴 볼 수 있다. 유주목의 조부인 유심춘(柳尋春)은 손흥조와 교유했던 인물이다.
손흥조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학업에 부지런했다고 한다. 1792년(정조 16)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1804년(순조 4)에는 문과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바로 권지 승문원 부정자(權知 承文院 副正字)에 임명되었다. 1824년(순조 24) 12월 성균관 전적(成均館 典籍)이 되었으며, 1825년(순조 25) 11월에는 조경묘 영(肇慶廟 令)에 제수된 후 사은(謝恩)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에 제수되었으나, 이후 관직에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 은거하였다. 손흥조는 가난한 삶에도 연연하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며 유유자적하게 생활하다, 1832년(순조 32) 7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유주목이 작성한 행장에 따르면, 유고(遺稿) 1편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묘소]
선산(善山) 청화산(靑華山)[현 경상북도 구미시와 의성군 경계]에 묘소가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