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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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卞璃 |
이칭/별칭 | 계옥(季玉),병애(屛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06년 - 변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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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46년 - 변리 사망 |
거주|이주지 | 선산부 - 경상북도 구미시 |
거주|이주지 | 후천동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 |
성격 | 음관 |
성별 | 남 |
본관 | 초계(草溪) |
대표 관직 | 종부시 주부 |
[정의]
조선 전기 비안현[현 의성군 비안면]에 거주한 문신.
[가계]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계옥(季玉). 호는 병애(屛崖). 효행으로 이름이 높은 변용(卞勇)의 현손(玄孫)으로 알려져 있다.
[활동 사항]
변리(卞璃)[1506~1546]는 1506년(중종 1)에 출생하였으며, 1546년(명종 1) 8월 23일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는 선산부(善山府)[현 경상북도 구미시]에 거주하였고, 이후 비안현 후천동(後川洞)[현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으로 이주하여 이 동리를 개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성품이 온후하고 시혜를 널리 베풀어 찬사를 받았으며, 선조의 효를 이어 받고 덕업을 섬겨, 세칭 아사(雅士)라 불렸다고 한다. 『교남지(嶠南誌)』에 음사(蔭仕)로 수록되어 있으며, 벼슬이 종부시 주부(宗簿寺 主簿)에 이르렀다. 백학산 서쪽에 유택이 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성산인(星山人) 이기윤(李基允)이 묘갈문을 작성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