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08 |
---|---|
한자 | 金龍庇 |
이칭/별칭 | 의성군(義城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추모 시기/일시 | 1868년 - 오토재를 건립 |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 |
사당|배향지 | 오토재(五土齋)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의성 |
대표 관직 | 태자첨사(太子詹事) |
[정의]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 의성 김씨 시조인 김석(金錫)의 9세손으로 의성 김씨의 중시조이다. 아버지는 김공우(金公瑀)이며, 부인은 영동정(令同正) 강후주(姜后柱)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용비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이 쳐들어와 경상북도 안동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몽진했을 무렵 의성 일원의 도적 무리를 다스려 소란한 민심을 수습했다. 그 난을 평정한 공으로 추절보절공신 의성군(推節保節功臣 義城君)에 책봉되었으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에 있는 오토재(五土齋)는 김용비의 재실이다. 원래 의성군 백성들이 김용비의 공덕을 기려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에 진민사(鎭民祠)을 세우고 향사(享祀)를 지내다가 1868년 오토재로 옮겼다고 한다. 오토재는 1987년부터 2년간에 걸려 중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