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96 |
---|---|
한자 | 金末 |
이칭/별칭 | 간지(幹之),문장(文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 자는 간지(幹之), 시호는 문장(文長). 부인은 유정(柳汀)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말(金末)[1383~1462]은 1417년(태종 17)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 학유(成均 學諭), 1427년(세종 9) 부사정(副司正)에 제수되었으며, 여러 번 관직을 옮겨 성균관 대사성(成均館 大司成)에 이르렀다. 1447년(세종 31) 처음에 김반(金泮)이 대사성, 김말은 사성(司成)으로 있을 때, 겸사성(兼司成) 윤상(尹祥)과 더불어 경서(經書)의 이동(異同)을 논쟁하다가 김반은 파직되고, 김말은 종학(宗學)으로 옮긴 적이 있었다.
1451년(문종 1)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제수되고, 1453년(단종 1) 가선 대부(嘉善 大夫)로 승진하여 경창 부윤(慶昌 府尹)이 되었다가 예문 제학(禮文 提學)으로 옮겼다. 1457년(세조 3) 중추원 부사(中樞院 副事), 1462년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지냈다. 예문 제학 때부터 여러 차례 벼슬을 그만두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는데 1464년 죽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경서(經書)에 정통하였다. 제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조정의 유사(儒士)들이 그의 문하에서 많이 나왔다. 성질이 굳고 적확하며 몸가짐이 방정하였다.
[학문과 저술]
성리학에 뛰어나고 경서(經書)에 정통하여, 김구(金鉤)·김반(金泮)과 함께 경학 삼김(經學 三金)으로 불렸는데, 이들은 조선 초기 성균관 중심의 국가 성리학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상훈과 추모]
1455년(세조 1) 좌익 원종공신(佐翼 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