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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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開物 |
이칭/별칭 | 서정(瑞廷),원구(元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원구(元龜), 초명은 서정(瑞廷). 아버지는 충렬왕, 충선왕 대의 관료로 찬성사를 지낸 김훤(金晅)이다.
[활동 사항]
김개물(金開物)[1272~1327]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충선왕이 세자 때 총애를 받아 즉위한 후 감찰사(監察史), 전부시 승(典符寺 丞) 등을 제수받았다. 그런데 당시 왕의 측근이었던 내부령 강융(姜融)의 부당한 청탁을 거절하여, 그의 모함으로 송가도(松加島)[인천광역시 강화군 석모도와 합침]로 귀양 갔다. 그 후 지협주사(知陜州使)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으니 다시 자연도(紫燕島)[인천광역시 영종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15년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325년(충숙왕 12) 개혁 정치가 시행되면서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충숙왕 측근들의 전횡으로 개혁 정치가 한계에 부딪치자 병을 핑계로 사임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김개물은 성격이 강직하였으며 신의로써 사람을 사귀고,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