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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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乃錫 |
이칭/별칭 | 지언(知彦),원재(元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 3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91년 - 신내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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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8년 - 신내석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자 의성현에서 의병을 일으킴 |
몰년 시기/일시 | 1742년 - 신내석 사망 |
출생지 | 신내석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
성격 | 유생|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의병장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지언(知彦), 호는 원재(元齋). 아버지는 신준(申埈), 어머니는 손지효(孫至孝)의 딸 경주 손씨(慶州 孫氏)이고, 할아버지는 신흠도(申欽道), 증조할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신한(申僩)이다. 처는 장원준(蔣元浚)의 딸 아산 장씨(牙山 蔣氏)이다.
[활동 사항]
신내석(申乃錫)[1691~1742]은 1691년(숙종 17) 경상도 의성현 원흥(元興)[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뛰어나, 이와 관련된 일화가 전해진다. 13세 때에 부친이 병으로 위독하여 안동으로 직접 약을 구하러 갔는데, 낙동강 물이 홍수로 불어 건너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사공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자, 신내석의 효성에 감동한 사공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배를 저어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부모상으로 여묘 살이 할 때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조석(朝夕)으로 곡(哭)을 하였기에, 그 산을 효려산(孝廬山)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자 의성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8세기 후반 안동에서 편찬한 『무신 창의록(戊申 倡義錄)』에 따르면, 신내석은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1728년 3월 2일 신렴(申濂), 신효(申涍) 등과 더불어 의성현의 여러 유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창의를 계획하고 동지를 격려했다고 한다. 신내석은 같은 고을 출신의 신덕기(申德沂), 이경재(李慶載), 박사윤(朴師尹), 박계령(朴桂齡)과 더불어 이 책의 「의성 의병 군문 좌목(義城 義兵 軍門 坐目)」에 수록되어 있다. 1742년(영조 18)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족보에는 유고(遺稿)가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의성군 북쪽에 위치한 여사현(如士峴)에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