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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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豪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류영철 |
[정의]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개설]
호족은 신라 말 고려 초의 전환기에 각 지방의 유력자로서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그 지방의 민중들을 행정적·군사적·경제적으로 직접 지배한 지방 세력으로서, 주로 성주(城主)·장군(將軍)으로 지칭되며, 사회 변동을 주도하였다.
[용어 문제]
호족이란 용어의 사용과 관련하여서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다. 즉, 일반적으로 독자적 세력을 확보한 지방 유력자를 지칭하는 용어에 있어 사료 상 그 표현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우선 주목된다.
앞서 언급한 성주, 장군 외에도 호걸 웅호(豪傑 雄豪), 관족(冠族), 성수(城帥), 군인(郡人), 현인(縣人) 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호족이라는 용어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경우는 현재까지 『조당집(祖堂集)』의 요오 화상(了悟 和尙) 순지(順之)에 대한 기록에서 단 한차례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중국사에서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호족과 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에 대하여 성격상의 비교 검토를 통한 용어의 정립은 아직 남겨진 과제이다.
[호족의 등장 배경과 성립 요건]
각 지방에서 호족이 등장한 배경은 신라 하대의 정치적 난맥상으로 인한 중앙 권력의 약화와 농민들의 항쟁, 대규모 도적 집단의 출현이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와 관련하여 호족이 될 수 있었던 요건은 우선 누대에 걸쳐 그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족적 기반(族的 基盤)과 경제력, 인적 자원이며, 호족이 되었던 자들은 대체로 중앙에서 낙향한 귀족 출신의 호족, 군진(軍鎭) 세력의 호족, 해상 세력 출신의 호족, 촌주(村主)출신의 호족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의성의 호족]
의성의 경우 진보 성주(眞寶 城主)로 있다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의성으로 옮겨온 후, 929년(태조 12) 의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홍술(洪術)이 있다. 또한 궁예의 태봉 정권에서 마군 장군으로 있다가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 공신이 되어 고려 조정에서 활약하였고, 그의 딸이 태조의 26비인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이 되어 태조 왕건의 장인이 되었던 홍유(洪儒)를 호족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