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의성 출신의 정치인. 권병로[1903~1988]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서 신생 의원(信新 醫院)을 개업해 운영하다가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총선거에 대한 독립 촉성회 후보로 출마했다. 의성군 을구에서 당선되어 제헌 의원이 되었다. 1950년 5월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의성군 을구에 출마하여 재선 의원이 되었다. 1955년 단북면에 삼...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응소(應韶). 김우성(金禹聲)[1876~1947]은 의성군 다인면 덕지 3리 출신으로, 일찍이 재질이 특출하여 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3세에 대구 감시(監試)에서 입선하니 소년 재사(才士)로 문명을 떨쳤으며, 더욱 면려정진(勉勵精進)하여 학업이 크게 성취하였다.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우정국 주사(主事)에 임명...
근현대 의성 출신의 정치인. 박영교(朴永敎)[1906~1966]는 1946년 11월 14일부터 1948년 4월 8일까지 의성군 안계면 제3대 면장으로 재임했다.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로 제정되어 같은 해 12월 15일에 개정된 지방 자치법에 따라 1952년에 실시된 지방 자치 선거에서 안계면 면장으로 선출되어 1952년 5월 5일부터 1954년 2월 9일까지 안계면 제...
근현대 의성 출신의 정치인. 박영출[1909~1975]은 1930년대 후반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연수생을 수용하기 위한 숭덕 학사와 숭덕 교회를 설립했으며 1940년대 초반 숭덕 교회 목사로 취임했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귀국한 후 서울에 숭덕 학사를 재건하는 한편 민주 국민당에 입당해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 경상...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교육자. 오진선(吳進善)[1852~1925]은 대한 제국의 관료였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하였다. 1906년 11월 20여 명의 의성 지역의 유지들과 함께 교육 구국을 목적으로 한 인재 양성을 위해 사립(私立) 문소 학교(聞韶 學校)[현 의성 초등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였다. 설립 초기에 일본인 교사를 초빙하여 소위 왜학(倭學)으로 비난...
근현대 의성 출신의 교육자. 오하수(吳夏洙)[1888~1962]의 자는 우현(禹鉉), 호는 남운(南雲)이며, 1910년부터 1917년까지 조선 총독부(朝鮮 總督府) 임시 토지 조사국(臨時 土地 調査局) 서기(書記)를 역임한 후, 의성 지역에서 상업 활동을 하면서 청년 운동 등 각종 사회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 3월 20일 창립된 의성 금주 동맹회(義城 禁酒 同盟會) 평의원을...
근현대 의성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정부(靜夫), 호는 소원(韶園). 진성 이씨 사곡파(舍谷派) 입향조 이희정(李希程)의 12세 손이다. 아버지는 이원우(李元瑀), 어머니는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자녀는 장남 이성재(李成栽)·차남 이완재(李完栽)·삼남 이규재(李圭栽)·사남 이대재(李大栽)·오남 이태재(李兌載)와 장녀 이난재(李蘭栽)가 있다. 이수락(李壽洛...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교육자. 이종섭(李鍾燮)[1858~?]은 1902년 창원항(昌原港) 총순(總巡), 1903년 상공 학교(商工學校) 교관(敎官)을 지낸 관료로 1909년 4월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에 우희목(禹熙穆)·김제하(金濟夏) 등과 함께 병산 학교(屛山學校)를 설립하였다. 「경상북도 비안군 병산 학교 취지서(慶尙北道 比安郡 屛山 學校 趣旨書)」에 의하면, 병산 학교는 한...
근현대 의성 출신의 정치인. 정우일[1898~1960]은 의성 공립 간이 농업 학교를 졸업 후 대구 계성 중학교 3학년을 수료하고 의성 금융 조합 평의원으로 근무했다. 연령이 초과되어 초등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1925년부터 1929년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소재 의성 교회에 설치되었던 강습소에서 성경과 일반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다. 1945년 8·15 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