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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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興里 |
이칭/별칭 | 재앞[城前]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병호 |
변천 시기/일시 | 1935년 -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 신흥리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로 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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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82㎢ |
가구수 | 67가구 |
인구[남/여] | 107명[남 58명/여 49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신흥리(新興里) 앞에 합미성(合米城)이 있어 재앞[城前]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구전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흥 마을은 백제 시대부터 형성된 마을로, 윤씨가 처음 자리 잡았다고 한다. 개항기 남원 48방 중 하나인 성동방(城東坊)에 속하였다. 일제 강점기 재앞에서 신흥리로 개칭하였다. 당시는 남원군 대산면에 속하였으나 1935년 순창군 동계면에 편입되었다. 장동 마을은 개항기 남원 48방 중 하나인 성남방(城南坊)이었다. 일제 강점기 남원군 대산면에 속하였다가 193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순창군에 편입, 신흥리에 합병되었고, 1960년 장례동(藏禮洞), 장동(藏洞)으로 분리되었다.
[자연 환경]
신흥리 마을 앞 동쪽은 남북으로 칠선봉(七仙峯) 산맥이 가로놓여 있고 골짜기 건너에는 누에머리산[蠶頭山]이 이어져 있다. 마을 뒤 서쪽은 자라가 누워 있는 형국의 오산(鰲山)이 동편 산과 같이 남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합미산이 동서로 뻗어 있고 그 정상에 서면 무량산(無量山)까지 보인다. 마을 남쪽으로 책여산(冊如山)이 보인다. 풍수지리설에서 책여산이 보이면 재앙이 온다 하여 방패막이로 300년 넘은 괴목, 느티나무, 소나무로 수호림을 조성하였다. 신흥 마을 앞산이 장태봉이다. 산의 형태가 닭장태 모양으로 생겨서 장태봉이라 명하였다.
두머리는 신흥 마을 장동 고개 왼쪽이 뱀이 머리를 길게 빼고 기어 내려오는 형상이다. 이 명당을 사두혈이라 하며, 지금도 풍수지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장동 마을 앞에는 넓은 주월제가 있고, 동쪽으로 누에머리산이 있다. 마을 뒤에는 합미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고 정상에는 합미성이 있다. 합미산 왼쪽 능선엔 차일봉이 있는데, 그 능선이 마을 입구까지 내려와 있다. 오른쪽으로는 사두혈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아주 온화하다. 마을 뒤에 서재봉과 도룡매봉이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면적은 2.82㎢로 농경지는 88만㎡, 임야는 1.81㎢이다. 신흥리의 인구는 67가구, 107명으로 남자가 58명, 여자가 49명이다. 신흥리는 신흥 마을과 장동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앞에서 직선거리로 400m 정도 가면 순창-오수 간 13번 지방 도로가 있어 버스가 하루 40여 회 왕복 운행한다. 신흥리에서 순창까지는 16㎞, 오수까지는 14㎞, 남원까지는 22㎞, 면 소재지까지는 2.2㎞ 떨어져 있어 동계면의 중앙에 위치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젊은이들이 양계업, 원예 등을 활발히 하고 있고, 밤과 감, 대추, 매실 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6·25 전쟁 때도 가옥이나 인명 피해가 없어 피난처로 전해지고 있다.
신흥리 뒷산 자래산 기슭에 전양재(田良齋)와 경암(敬庵) 김교준(金敎俊)[1883~1944]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오산 서원(鰲山書院)이 자리하고 있다. 동계면 신흥리 일대는 최근에 동계면 논두렁 명당이라 하여 풍수지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마을 옆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뱀과 같은 가느다란 능선이 하나 보이는데 그 능선 끝에 마을 사람들이 사두혈이라 부르는 무덤 한 개가 있다. 뱀 머리에 돌을 올리면 뱀이 힘을 못 쓰는 것처럼 그곳에 비석을 올리면 묏바람이 일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석을 무덤 앞이 아닌 그 아래 논에다 세워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