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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양현(良炫), 호는 취암(翠庵). 아들은 강린(姜璘)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강대일(姜大一)은 1871년(고종 8)에 출생하였다.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며, 천성이 인자하고 재덕(才德)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지조(志操)가 고결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살았다. 학문에 전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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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에 있는 1984년 유학자 전우와 김교준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우. 경현사(景賢祠)는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와 경암(敬菴) 김교준(金敎俊)[1883~1944]을 모신 사우이다. 전우는 대한 제국 말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일제에 의해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전라북도의 작은 섬들을 옮겨 다니다 계화도에 정착하여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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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권효(權曉)의 5세손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권구덕(權九德)은 조선 후기의 효자로 형제 여섯 명이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이 먹으며 모든 재산을 같이 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묘지 아래에 여막을 짓고 주야로 슬프게 소리 내어 울어 피눈물이 물 솟듯이 흘렀다고 한다. 어머니가 집에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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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 때 순창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킨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요일(堯日), 호는 만은(晩隱). 4대조는 길창 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이다. 권효(權曉)는 세종 때 벼슬이 사정(司正)에 이르렀고, 1452년(단종 1) 수양 대군이 고명 사은사(誥命謝恩使)로 명나라에 갈 때 수행하였다. 단종이 손위(遜位)하고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순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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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심(敬心), 호는 서담(西潭), 초명은 김의현(金宜鉉). 증조할아버지는 김상신(金相信)이고 형은 김기창(金箕昌)이다. 김기삼(金箕三)[1832~?]은 1832년(순조 32)에 출생하였는데 벼슬은 사복시 첨정(司僕寺僉正)을 지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먹임으로써 며칠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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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로(敬魯), 호는 순재(順齋), 초명은 김창현(金昌鉉). 증조할아버지는 김상신(金相信)이고 동생은 김기삼(金箕三)이다. 김기창(金箕昌)[1825~?]은 1825년(순조 25)에 출생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먹임으로써 며칠을 더 살게 하였으며,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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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지역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준화(朴準化)이고, 남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봉현(金琫炫)이다. 김봉현 처 열녀 밀양 박씨는 김봉현과 혼인한 후 나이 드신 시아버지가 중풍(中風)을 앓자 7년여 동안 정성을 다하여 약시중을 하며 간병하였다. 그러나 끝내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를 갖추어 삼년상을 마쳤다. 이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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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군보(君輔), 호는 작천재(鵲川齋). 할아버지는 김장(金將)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김치세(金致世)[1563~1606]이다. 김산경(金汕慶)[1591~?]은 1591년(선조 24)에 순창군 오산면[현 순창군 풍산면]에서 출생하였다. 음직(蔭職)으로 통사랑(通仕郞)을 지냈으며,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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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군서(君瑞), 호는 염계(廉溪). 아버지는 김시택(金始澤)이고, 부인은 구성훈(具聖勳)의 딸 능성 구씨이다. 동생은 김상홍(金相弘)이다. 김상신(金相信)[1768~?]은 1768년(영조 44)에 김시택의 큰아들로 출생하였다. 벼슬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교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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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열녀. 본관은 능성(綾城). 아버지는 구성훈(具聖勳)이고, 남편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상신(金相信)이다. 김상신 처 열녀 능성 구씨[1768~?]는 1768년(영조 44) 순창군 풍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김상신에게 출가하여 시가의 가훈에 감화되어 자식을 사랑하고 시부모에게는 효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병이 들어 악화되자 대소변을 맛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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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민(德敏), 호는 옥강(玉崗), 초명은 김정룡(金廷龍). 아버지는 김시택(金詩澤)이고, 부인은 강영수(姜永秀)의 딸 진주 강씨이다. 아들은 김익환(金翊煥)이다. 형은 김상신(金相信)이다. 김상홍(金相弘)[1784~?]은 1784년(정조 8)에 김시택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약을 구하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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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강영수(姜永秀)이며, 남편은 김상홍(金相弘)이다. 김상홍 처 열녀 진주 강씨[1786~?]는 1786년(정조 10)에 출생하여 김상홍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이 괴질로 위급하자 두 차례에 걸쳐 좌우 허벅지를 베어 구환하여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 김시택(金始澤) 이후 조손(祖孫) 간 2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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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에 거주하며, 강학당인 훈몽재를 수축한 학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휴징(休徵), 호는 자연당(自然堂). 현조할아버지[5대조]는 김인후(金麟厚)[1510~1560], 아버지는 김창하(金昌夏)이다. 김시서(金時瑞)는 1652년(효종 3) 장성(長城)에서 출생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순창의 쌍치에 은거하며,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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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옥(如玉), 호는 오강(鰲崗). 부인은 초계 최씨이다. 아들은 효자 김상신(金相信)과 김상홍(金相弘)이고 손자는 효자 김익환(金翊煥)이다. 김시택(金始澤)[1749~?]은 1749년(영조 25)에 출생하였고, 벼슬은 통덕랑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6세 때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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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 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최부승(崔夫昇)이고, 남편은 김시택(金始澤)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김시택 처 효부 초계 최씨는 1748년(영조 24) 출생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남편의 효행을 도와 40여 년 동안 홀시어머니를 공양하는 데 지성으로 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김시택 이후 조손(祖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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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윤(士允), 호는 오봉(鰲峰). 할아버지는 김시택(金始澤)이고 아버지는 김상홍(金相弘)이다. 김익환(金翊煥)[1804~?]은 1804년(순조 4)에 출생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먹임으로써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 상을 당하여 예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시묘살이 삼년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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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병. 본관 김해(金海). 자는 준영(俊永), 호는 지지당(知止堂), 초명은 김춘세(金春世). 증조할아버지는 문민공(文愍公) 김일손(金馹孫), 아버지는 김장(金將)이다. 아들은 효자 김산경(金汕慶)이다. 김치세(金致世)[1563~1597]는 1563년(명종 18) 순창군 풍산면에서 출생하였다. 조헌(趙憲)의 문인으로서 1590년(선조 23)에 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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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남산 서원(南山書院)에서 향사하던 권효(權曉)는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요일(堯日), 호는 만은(晩隱)으로 안동 권씨 17세손이며 길창 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1281~1352]의 4세손이다. 세종 때 벼슬이 사정(司正)에 이르렀고 1452년(단종 1) 수양 대군이 고명 사은사(誥命謝恩使)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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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 있는 단군왕검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현대의 사당. 단성전(檀聖殿)은 우리 민족의 시조이며 고조선의 첫 왕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을 기리기 위해 모신 사당이다. 일명 단군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단군왕검은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열었다고 칭송되는 인물로, 단웅 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이고, 환웅(桓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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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용산리에 있는 1971년 기정진·기우만·강대일을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 취암(翠庵) 강대일(姜大一)[1871~1950]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학문을 계승한 기우만(奇宇萬)[1846~1916]에게 나아가 학문을 익혔다. 일제 강점기에 유학을 진흥하기 위해 무이산(武夷山) 기슭에 정사(精舍)를 짓고 취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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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있던 조선 후기 주희·설공검·설인검·조원길을 모신 서원. 순창군청에서 강천사로 가다가 팔덕면사무소를 지나 500m 정도 가서 사거리 길목에서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청계 마을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 정도 간다. 청계 마을 회관 앞에서 오른쪽 농로로 올라가면 무이산(武夷山) 아래 능선 자락에 있는 농토가 무이 서원(武夷書院)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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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화남사에 배향된 고려 후기의 문관이자 효자.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대방(大方), 호는 송암(松庵).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시조 서신일(徐神逸)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서희팔(徐希八)이다. 아들은 대장군(大將軍) 서준(徐俊)이고, 손자는 상장군(上將軍) 서민경(徐敏敬)이다. 서릉(徐稜)은 장성현(長城縣)[지금의 전라남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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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화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무인.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대수(大壽), 호는 정암(正巖). 고조할아버지는 유명한 효자 서식(徐湜)이다. 서숭로(徐崇老)[1532~1597]는 1532년(중종 27)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심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학문이 고명하여 경전과 사서를 널리 습득하였다. 특히 병서(兵書)에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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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화남사에 배향된 조선 시대의 효자.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청원(淸源), 호는 사암(思巖). 고려 고종 때의 문관이자 효자인 서릉(徐稜)의 9세손이다. 서식(徐湜)은 효성이 지극하여 살림이 가난한 가운데에도 부모를 공양하는 데 있는 힘껏 하였고, 학행으로 경연(經筵)에 선발되어 중정대부(中正大夫) 진안 현감(鎭安縣監)에 제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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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태초(太初), 호는 유계(柳溪)이다. 서영우(徐永佑)[1605~?]는 1605년(선조 38)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8세에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수학하였으며 특히 병서에 통달하였다. 김문경(金文敬)의 문인으로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격분을 이기지 못하고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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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인.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일이(一以), 호는 미재(眉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설홍윤(薛弘允), 아버지는 통례원 통례(通禮院通禮) 설명(薛蓂)이다. 설관도(薛貫道)[1612~?]는 1612년(광해군 4) 순창에서 출생하였고, 1639년(인조 17)에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에 올랐다. 문장과 행의로 이름이 높고 구제 사업에 주력하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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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교육 시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그러므로 향교는 크게 교육을 담당하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 공간과 제사를 담당하는 대성전으로 구분된다. 대성전과 명륜당의 배치는 대성전이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있는 전묘후학(前廟後學)과, 대성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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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명보(明甫), 호는 칠휴당(七休堂).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1429~1503]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신흡이다. 신상용(申尙溶)[1577~1618]은 1577년(선조 10)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대에서 출생하였으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고 은거하여 성현의 책을 읽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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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눌(仲訥), 호는 쌍매당(雙梅堂). 증조할아버지는 귀암(龜岩) 양배(楊培), 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이며, 아버지는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을 지낸 양홍(楊洪)[1508~1564]이다. 어머니는 안극함(安克諴)의 딸 순흥 안씨이다. 양사민(楊士敏)[1531~1589]은 1531년(중종 26)에 순창 구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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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본관은 도강(道康). 아버지는 별제(別提) 김대립(金大立), 남편은 구음공(龜陰公) 양시진(楊時晉)[1573~1615]이다.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1577~1650]는 1577년(선조 10)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깊이 수학하여 일찍이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양시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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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화백(和伯), 호는 화양(華陽). 아버지는 양시진(楊時晋)이다. 양여매(楊汝梅)[1601~1655]는 1601년(선조 34)에 출생하여 1635년(인조 13)에 진사에 올랐으며, 박학(博學)과 문장(文章)으로 이름이 있었다. 1636년(인조 14) 양여매의 주도로 옥천 사마재(玉川司馬齋)를 결성하였는데, 옥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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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있던 조선 후기 학자 김인후, 이이, 정철, 김시서를 모셨던 서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는 1545년(인종 1)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처자가 있는 순창으로 내려왔다. 1548년(명종 3) 순창군 쌍치면 점암촌(鮎巖村)에 우거하며 초당을 지어 훈몽재(訓蒙齋)라 이름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고암(鼓巖) 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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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덕천리에 있던 조선 전기 문신 조흡을 모신 사우. 퇴사헌(退思軒) 조흡(曺恰)[?~1429]은 본관이 창녕(昌寧)이고, 초명은 조흡(曺洽)이다.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에게 나아가 이방원(李芳遠)[태종]과 함께 수학하였다. 1400년(정종 2) 박포의 난에 공훈을 세웠다. 벼슬은 안산 군수 상호군 가선대부 우군 도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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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청백리 임용진과 임문수를 모신 사우. 임용진(林龍鎭)[1756~?]의 자는 양여(養汝), 호는 화수당(花樹堂)이다. 아버지는 임창원(林昌遠)으로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태어났다. 1816년(순조 16) 문과에 급제, 성균관 전적을 거쳐 전라 도사·이조 정랑 등을 지냈다. 성품이 정직하고 처사가 분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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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사 김일손, 김치세, 김선경을 모시기 위해 1957년 세운 사우. 옥산사(玉山祠)는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1048번지[대가 1길 25-32]에 있다. 순창군청에서 대강·유등 방면 지방도 730호선을 가다가 오산 사거리에서 풍산·대강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간다. 1㎞ 정도에서 옥과·풍산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1㎞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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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의 효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사진(李士鎭)이며, 남편은 여주 윤씨(驪州尹氏) 윤문상(尹汶相)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이귀순(李貴順)[1900~1950]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정숙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출가하여 가세가 빈곤하였으나 시종 근검한 생활로 자식 교육과 시부모 공양에 지성을 다하였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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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순창의 지계 서원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 고조할아버지는 이승건(李承健), 증조할아버지는 이심(李諶), 할아버지는 이지신(李之信)이다. 아버지는 이길(李劼)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부인은 파평 윤씨(坡平尹氏)로서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5남 1녀를 두었다.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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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오(子五), 호는 청재(淸齋). 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고 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이다. 아들은 효자 임종혁(林宗赫)과 임종빈(林宗彬)이다. 임광수(林光洙)[1750~?]는 1750년(영조 26)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집안의 가훈을 이어받아 더욱 가풍을 진작시켰다. 아버지의 등창이 심하자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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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성배(聖配), 호는 오암(鰲庵). 중종 때 승지를 지낸 귀래정(歸來亭) 임붕(林鵬)[1486~?]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임덕화(林德華), 할아버지는 임형원(林馨遠), 아버지는 상묵재(尙默齋) 임복(林馥)이다. 임문수(林文洙)[1802~1883]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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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주의(李周儀)이고, 남편은 나주 임씨(羅州林氏) 임병구(林炳球)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1883~?]는 1883년(고종 20)에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나주 임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섬기고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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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형보(亨甫). 아버지는 임재무(林再茂)이다. 아들은 효자 임양성(林養性)이고 손자는 임광수(林光洙)이다. 임시채(林時采)[1708~?]는 1708년(숙종 34)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일찍 안부를 묻는다는 뜻]의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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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군평(君平), 호는 호호옹(虎護翁). 할아버지는 임재무(林再茂)이고 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다. 아들은 효자 임광수(林光洙)이다. 임양성(林養性)[1730~?]은 1730년(영조 6)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가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허벅지에 난 종기로 고생을 하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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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대구(大邱). 아버지는 배윤복(裵胤福)이고, 남편은 평택 임씨(平澤林氏) 임용진(林容鎭)이다. 임용진 처 열녀 대구 배씨[1781~?]는 16세에 순창군 인계면 호계리의 임용진에게 출가하였다. 배씨는 시부모 공양과 남편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탕제를 끓여서 정성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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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도여(道汝), 초명은 임백긍(林栢兢)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고 할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 아버지는 임광수(林光洙)이다. 형은 임종혁(林宗赫)이다. 아들은 효자 임환(林煥)이다. 임종빈(林宗彬)[1801~?]은 1801년(순조 1)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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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字)는 문여(文汝), 초명은 임백혁(林栢赫). 증조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 할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 아버지는 임광수(林光洙), 동생은 임종빈(林宗彬)이다. 임종혁(林宗赫)[1782~1847]은 1782년(정조 6)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선대의 효제(孝悌)의 가훈을 이어받아 평생을 한 번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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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효자. 본관 평택(平澤). 자는 인숙(仁淑), 호는 송계(松溪).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임선미(林先味)[1362~1394]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필주(林弼周)이다. 임판호(林判鎬)[1879~1958]는 1879년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여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만 앞 사람들의 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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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원거(元巨), 호는 농암(聾庵), 초명은 임노항(林魯恒). 고조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이며, 할아버지는 임광수(林光洙), 아버지는 임종빈(林宗彬)이다. 임환(林煥)[1826~?]은 1826년(순조 26)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선인들의 가훈을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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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보(順甫), 호는 화암(花巖). 증조할아버지는 효자 정시태(鄭時泰)이고 아버지는 정채룡(鄭采龍)이다. 정상신(鄭商臣)[1775~?]은 1775년(영조 51)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가정의 교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예를 다하여 마쳤고, 시묘살이를 지성으로 하자 하늘이 감동하여 큰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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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미화(美化), 호는 방은(芳隱). 계림군(鷄林君) 정지년(鄭知年)[1395~1462]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언교(鄭彦僑)이다. 손자는 효자 정채룡(鄭采龍)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정시태(鄭時泰)는 품성이 순효하여 부모를 섬김에 있어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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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애죽당(愛竹堂). 할아버지는 정시태(鄭時泰), 아버지는 정세만(鄭世萬)이다. 아들은 효자 정상신(鄭商臣)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정채룡(鄭采龍)은 어려서부터 조상들의 행실을 본받아 잘 지켜서 홀어머니를 섬기는 데 효를 다 하였다. 어머니 앞에서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려서 마음을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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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어암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아버지는 돈녕부 판관(敦寧府判官) 정유침(鄭惟沈)이다. 정철(鄭澈)[1536~1593]은 1536년(중종 31) 서울 장의동(藏義洞)[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하였다. 인종(仁宗)의 귀인(貴人)[후궁]인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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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 부조묘(不祧廟)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가구(可久). 증조할아버지는 정인검(鄭仁儉), 할아버지는 정염(鄭濂)이고,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정효상(鄭孝常)[1432~1481]은 1432년(세종 12)에 출생하여 1451년(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4년(단종 2)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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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충신.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성중(聖中), 호는 농은(農隱). 증조할아버지는 옥천 조씨의 시조인 문하시중 조장(趙璋)이며, 아버지는 옥천 부원군으로 추증된 조전(趙佺)이다. 아들은 조유(趙瑜), 조영(趙瑛) 등이다. 조원길(趙元吉)[?~1391]은 1369년(공민왕 18)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검교 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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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에 대해 절의를 지킨 순창 출신의 의절신. 본관은 옥천(玉川). 호는 돈세옹(遯世翁). 아버지는 옥과 현감(玉果縣監)을 지낸 조희충(趙希忠)이다. 조윤옥(趙潤屋)은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단종 때 승정원 사간(承政院司諫)으로 있다가 세조의 찬탈 뒤 벼슬을 버렸다. 순창의 추산(追山)에 은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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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독처당(獨處堂).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응견(趙應堅)이고, 아버지는 조헌을 따라 순절한 조여관(趙汝寬)이다. 조의효(趙義孝)[1592~?]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국한 절사 조여관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3세 때에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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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한 공신. 본관 창녕(昌寧). 호는 퇴사헌(退思軒), 봉호(封號)는 옥천군(玉川君).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문하시중을 지내고 창성 부원군에 봉해진 조민수이다. 조흡(曺恰)[?~1429]은 1400년(정종 2) 태조의 넷째 아들인 이방간(李芳幹)이 박포(朴苞)와 결탁하여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 박포의 난이라고도 함]에서 공로를 세워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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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지북리에 있던 조선 후기 학자 양배, 이유겸, 양사형, 양응수를 모셨던 서원. 구암(龜巖) 양배(楊培)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순창으로 은거하여 아우 양돈(楊墩)과 함께 고기를 낚으면서 세상을 잊고 살았다. 만회(晩悔) 이유겸(李有謙)[1586~1663]은 1639년(인조 17) 순창 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쌍매(雙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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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지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최치원·최익현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우. 순창군 인계면사무소 앞에서 장수·동계 방면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가 인계 초등학교를 지나 가선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노가 삼거리까지 가서 다시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가면 지산길 사거리가 나오고, 그 사거리에서 왼쪽 지산 마을로 50m 정도 가면 왼편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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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인석(仁錫), 호는 지당(芝堂). 아버지는 진종하(晉宗夏)이다. 진규석(晉奎錫)[1906~?]은 1906년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지혜가 출중하였으며 의약술에도 능하였다. 18세 때 아버지가 병에 들었을 때 잠시도 곁을 떠나는 일 없이 정성을 다하였고, 병세가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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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달천(達千).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대사간 문하찬성사 최양(崔瀁)[1351~1424]의 13세손이다. 최관익(崔寬翊)[1817~?]은 순창군 구림면 월정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의용(儀容)이 단정하며 우애가 남달랐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의 병(病)에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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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김치행(金致行), 남편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낸 경주 최씨(慶州崔氏) 최길영(崔吉榮)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최길영 처 열녀 김해 김씨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0세에 출가하여 시부모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남편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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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안동(安東). 남편은 경주 최씨 최문석(崔文錫)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최문석 처 안동 권씨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부드럽고 정숙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0세에 출가하여 시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남편을 공경함에 예를 다하였다. 남편이 병에 걸리자 잠시도 곁을 떠나는 일이 없이 간호하여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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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여신(汝愼). 아버지는 최억창(崔億昌)이다. 최영국(崔榮國)[1772~?]은 1772년(영조 48)에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버지의 병환에 대소변을 맛보아 병세를 가늠하고 그 병을 자신이 대신하기를 기원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슬픔이 지극하였고 3년을 하루같이 성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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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인 김종현(金宗鉉)이고, 남편은 화순(和順) 최씨 최윤문(崔允文)이다. 최윤문의 처 효부 김해 김씨[1865~?]는 1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혼인하여 시부모를 정성껏 공양하고 남편을 공경함에 부도(婦道)를 다하였다. 남편이 병이 드니 백방으로 약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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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호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고려 말 충신 임선미를 모신 사우. 임선미(林先味)[1362~1394]는 본관이 순창(淳昌), 자는 양대(養大), 호는 휴암(休庵)이다. 고려 말 태학생으로서 나라가 망하자 조의생(曺義生) 등 71명과 만수산에 입산하여 은거하였다. 그들이 은거한 곳을 두문동이라 하고,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단어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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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현대에 서릉·서식·서숭로·서영우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우. 서릉(徐稜)은 『고려사(高麗史)』 효우전(孝友傳)에 입전되어 있는 고려를 대표하는 효자이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평생 벼슬하지 않았으며, 엄동설한에 개구리를 구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서식(徐湜)은 서릉의 9세손으로 부모가 돌아가시자 모두 6년 동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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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화산 서원(花山書院)은 1607년(선조 40)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周)[1429~1503], 충암(冲庵) 김정(金淨)[1486~1521],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1537~1593], 눌재(訥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