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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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烏耳島先史遺跡地保存運動 |
영어공식명칭 | Oido Prehistoric Site Preservation Movement |
이칭/별칭 | 오이도 패총 보존 운동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훈도 |
발생|시작 시기/일시 | 2000년 4월 23일 - 가칭 '오이도 선사 유적 보존을 위한 연대회의'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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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2002년 4월 1일 - 시흥 오이도 유적 국가 사적 제441호 지정 |
발단 시기/일시 | 2000년 초 - 한국수자원공사 시화지구 이주 단지 조성을 위한 오이도 안말 지역 평탄 작업 시작 |
전개 시기/일시 | 2000년 5월 - 오이도 선사 유적 보존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오이도 선사 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로 개칭 및 발족 |
전개 시기/일시 | 2001년 4월 - 오이도 선사 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패총 파괴 저지, 서명 운동, 법적 투쟁, 발굴 재조사 시작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4월 -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개장 |
발생|시작 장소 | 오이도 선사 유적지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안말마을 |
종결 장소 | 시흥 오이도 유적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
성격 | 시민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오이도 선사 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시흥YMCA|오이도어촌계|시흥저널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의 선사 유적을 시흥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운동.
[개설]
시화지구 이주 단지 조성으로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의 조개더미 유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시흥YMCA 등 시민 단체, 종교 단체와 오이도 주민들이 저지 행동과 서명 운동, 법적 투쟁 등을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펼쳤다. 그 활동으로 발굴 재조사를 실현시키고, 2002년에는 국가 사적 지정을 이끌어 냈다.
[역사적 배경]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에는 신석기시대 조개더미가 섬 전체에 산재해 있고, 통일신라시대 주거지 등 서해안의 역사와 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많다. 1980년대 말 시화지구 이주 단지 조성 과정에서 오이도 신포동·소래벌·가운데살막 조개더미가 사라졌다. 특히 지표 조사를 담당한 서울대학교 박물관 측이 일부 유물과 유구(遺構)만 발견되었다고 발표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한국수자원공사는 현장을 훼손시키며 이주 단지 조성 공사를 강행하였다. 이에 분개한 시흥시 시민 단체와 오이도 주민이 힘을 합쳐 2000년 조개더미 보존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경과]
오이도 선사 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현장 답사와 연구를 통해 그동안의 조사가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고, 보존 대책을 촉구하는 탄원서와 건의서를 문화재청 등 각계에 보냈다. 2000년 5월 16일에는 공사를 강행하려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작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였다. 문화재청이 시흥 시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2001년 4월 6일 시굴 조사를 하기로 결정하였으나, 한국수자원공사는 당초 발굴 기관이었던 서울대학교 박물관으로부터 중요 유물이 없다는 구두 확인을 받았다며 2001년 9월 27일 다시 굴착 공사를 강행하였다. 이에 시민대책위원회는 문화재청,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진정서와 항의 공문을 보내고 현장 공사 책임자를 고발하였다.
2000년 10월부터 11월까지 발굴 재조사 결과, 오이도 뒷살막에서 신석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유물과 유구가 확인되었다. 2001년 3월 2일 문화재청은 현장 보존 조치를 통보했으며 시민대책위원회는 2001년 11월부터 오이도 선사 유적지를 사적으로 지정하고, 역사 체험장과 역사 박물관 건립을 촉구하는 서민 서명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2002년 4월 1일 문화재청은 시흥 오이도 유적을 국가 사적 제441호로 지정하였다. 국내 조개더미 유적으로는 다섯 번째다.
[의의와 평가]
오이도 선사 유적지 보존 운동은 시흥시 시민 단체뿐만 아니라 시흥시 향토사료실, 지역 언론인 시흥저널, 오이도어촌계를 비롯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주민 운동이다. 오이도 선사 유적지 보존 운동을 통해 주민 운동의 영역이 유적과 문화 영역으로 넓혀졌으며 서해안 연안 도시로서 시흥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오이도 주민들이 현장의 문화 유적 교육 및 안내자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