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526 |
---|---|
한자 | 德水張氏 |
영어공식명칭 | Deoksu J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우일 |
본관 | 덕수 - 황해도 개풍군 덕수현 |
---|---|
입향지 |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
세거|집성지 |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 장군재마을 |
묘소|세장지 |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 - 경기도 시흥시 수인로 2164-48[조남동 산1-5] |
성씨 시조 | 장순룡 |
입향 시조 | 장옥 |
[정의]
고려 충렬왕 때의 장순룡을 시조로 하고, 황해도 개풍군 덕수현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장순룡(張舜龍)은 위구르계 사람으로 충렬왕 때 고려에 귀화해서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의 벼슬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세기 이후에는 장운익(張雲翼), 장유(張維), 장신(張紳) 등이 과거에 급제하고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 세력으로 서인(西人)의 핵심 가문이 되었다. 특히 인조의 둘째아들인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과 장유의 딸[인선왕후(仁宣王后)]이 국혼을 함으로써 덕수 장씨(德水張氏) 가문은 조선의 유력 가문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입향 경위]
장순룡의 8세인 장옥(張玉)[1493~?]이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여파로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장곡동]에 입향하였다. 이는 장유[1587~1638]의 문집인 『계곡집(谿谷集)』의 “안산 별장의 집 뒤에 단향목(檀香木)이 한 그루 있는데, 이것은 고조(高祖) 유정공(柳亭公)[장옥]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다(安山別業屋後有香檀一株 乃高祖柳亭公手植).”라는 구절을 근거로 한 것이다. 또한 12세인 장유는 1612년(광해군 4) 매제 황상(黃裳)이 김직재(金直哉)의 옥사에 연루되어 어머니 박씨 부인을 모시고 안산군으로 낙향을 한다. 이때 훗날 효종의 비가 되는 인선왕후가 태어나서 이곳은 왕비 출생지가 된다. 시흥시 목감동 장군재마을은 덕수 장씨 세거지이며 이곳에 선영이 있었는데 도시개발로 인해 대부분 이장하였다. 시흥시 조남동 장군재마을은 장유 후손들의 세거지이며 장유 묘와 장선징 묘 등 일가 묘소가 있다.
[현황]
통계청의 2000년 인구 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시흥시에 거주하는 덕수 장씨는 69가구 264명이다.
[관련 유적]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 시흥시 수인로 2164-48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