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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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彌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Park M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2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현 |
조성 시기/일시 | 1645년 - 박미 묘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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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92년 - 박미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45년 - 박미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3년 - 박미 신도비 비각과 사적비 건립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22-2 |
성격 | 묘소 |
양식 | 원형 합장 단묘 |
관련 인물 | 박미 |
소유자 | 반남 박씨 오창공파 종중 |
관리자 | 반남 박씨 오창공파 종중 |
[정의]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서예가인 박미의 무덤.
[개설]
박미(朴彌)[1592~1645]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연(仲淵), 호는 분서(汾西)이다. 아버지는 의정부우참찬 박동량(朴東亮)이고, 어머니는 승정원승지 민선(閔善)의 딸이다. 선조가 장인이다. 1603년(선조 36) 선조의 다섯째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혼인하여 금양위(錦陽尉)에 봉해졌다. 1638년(인조 16) 동지성절사(冬至聖節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금양군(錦陽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문예에 능했는데, 특히 글씨를 잘 썼다. 이항복(李恒福)에게 수학하고, 장유(張維)·정홍명(鄭泓溟)과 교유하였다.
[위치]
박미 묘는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22-2에 있다. 군자동 비앞골의 나지막한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군자봉 동쪽 능선에 있는 아버지 박동량 묘 아래에 있다.
[형태]
부인과 합장한 단분(單墳)이다. 석물은 봉분 앞에 상석·향로석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이 있다. 봉분 앞에 있는 높이 1.45m의 묘표(墓表)는 음기(陰記)와 건립 연대가 없어 조성 시기는 알 수 없다.
[금석문]
신도비는 박미 묘에서 동북쪽으로 250m 지점에 아버지 박동량 신도비와 함께 있다. 신도비는 2단의 기단석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은 형태이다. 신도비의 총 높이는 3.68m이다. 신도비의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이조판서 이의현(李宜顯)이 썼으며, 좌의정 민진원(閔鎭遠)이 전자(篆字)하였다. 비신의 상단에 '금양군 시문정 박공신도비명(錦陽君諡文貞朴公神道碑銘)'이라고 전액(篆額)되어 있다.
[현황]
1993년 신도비 비각과 사적비가 건립되었다. 박미의 아버지 박동량의 묘와 신도비는 1988년 5월 31일 시흥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박미 묘는 박동량 선생 묘 및 신도비와 함께 조선 후기 묘제 및 석물 연구에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