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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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城徐氏 |
영어공식명칭 | Dalseong S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식 |
본관 | 달성 - 대구광역시 달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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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
성씨 시조 | 서진 |
입향 시조 | 서영석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서진(徐晋)을 시조, 달성을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
[개설]
달성 서씨(達城徐氏)의 시조 서진은 고려 시대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면서 달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었다. 이후 3대에 걸쳐 달성군에 봉해지고, 후손들도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구)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달성으로 삼았다.
[연원]
달성 서씨의 시조 서진은 고려에서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고 달성군(達成君)에 봉해졌다. 그는 신라 말기에 아간(阿干)을 지낸 이천 서씨(利川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으로 이천 서씨에서 분관하였다.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에 이르기까지 3대가 달성군(達城君)을 습봉하였고, 후손들이 달성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달성(達城)으로 하였다. 달성 서씨는 고려 시대 이후 경파(京派)와 향파(鄕派)로 나누어졌는데 경파는 서한(徐閈)을 시조로 하고 조선 시대에 중앙 조정에 출사한 계통을 일컬어 대구 서씨(大丘徐氏)로 부르게 되었고, 향파는 서진을 시조로 절의를 지켜 출사(出仕)하지 않고 영남 일원에서 세거한 계통이다.
[입향 경위]
조선 영조 때 절충장군을 지낸 현감공파(縣監公派) 16세손 서영석(徐榮碩)이 약 250년 전에 성주에 입향하여 그 후손들이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벽진면, 월항면 인촌리 등지에서 현재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17세손 서태걸의 후손들은 벽진면 운정리, 월항면 인촌리에 살고 있으며, 21세손 서경홍의 자손은 선남면 용신리 등지에 살고 있다.
[현황]
달성 서씨의 후손들은 선남면, 벽진면, 월항면 등지에서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성주군에 362명의 달성 서씨가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6리에 서병무기념비(星谷徐丙武紀念碑)가 남아 있다. 비석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서병무의 독립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성산리 원예조합 참외유통센터 입구 도로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