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321 |
---|---|
한자 | 檜淵偶吟 |
영어공식명칭 | Hoeyeonueum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신정리 25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유영 |
[정의]
조선 후기 정구가 성주 회연초당에 거처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성리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는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유촌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41세 때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짓고 거처하였다.
[구성]
칠언 절구의 짧은 한시이며, 회연초당 주변의 회연이라는 연못과 한강대를 소재로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내용]
회연초당 앞을 흐르는 대가천과 그 물이 모였다 돌아나가는 회연, 그리고 대가천 주변 한강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회연우음(檜淵偶吟)」의 전반부에서는 대가천과의 인연에 의해 회연초당을 짓고 한강과 회연을 점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자긍심을 표현한다. “가천은 나에게 깊은 인연 있나니/ 한강과 회연을 점유하였네/ 흰 돌과 맑은 시내를 온종일 즐기니/ 세상사 어떠한 일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리오[伽川於我有深緣 占得寒岡又檜淵 白石淸川終日翫 世間何事入丹田].”라는 「회연우음」의 전체 구절을 보아도 정구가 회연초당 주변 경관을 얼마나 아름답게 여기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특징]
「회연우음」은 정구의 문집인 『한강집(寒岡集)』 권1에 실려 있다. 정구 사후 후인들이 성주군 수륜면 회연서원 뒤편 바위인 봉비암에 글자를 파서 「회연우음」을 새겨 놓았다.
[의의와 평가]
「회연우음」은 조선 중기 문인인 정구가 성주군 수륜면에 회연초당을 짓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흥취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