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307
한자 武屹九曲
영어공식명칭 Muheulgugok
이칭/별칭 「앙화주자무이구곡시운(仰和朱子武夷九曲詩韻)」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신정리 25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유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43년 - 정구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20년 - 정구 사망
배경 지역 회연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신정리 258]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정구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 성리학자인 정구가 지은 한시.

[개설]

성리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는 1604년(선조 37) 성주 대가천 상류에 무흘정사(武屹精舍)를 경영하면서 주자(朱子)[1130~1200]의 학문과 삶을 따르고자 하였다. 이에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화운(和韻)[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써서 화답하는 시를 지음]하여 「앙화주자무이구곡시운(仰和朱子武夷九曲詩韻)」 10수를 지었다. 하지만 정구 사후 후손과 문인들은 정구가 은거하던 대가천 상류를 무흘구곡으로 인식하고, 이 작품을 무흘구곡을 대상으로 창작한 무흘구곡시로 인식하였다.

[구성]

「무흘구곡(武屹九曲)」은 모두 10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강집(寒岡集)』 권1에 실려 있다.

[내용]

정구가 창작한 구곡시는 후대에 설정된 무흘구곡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구의 구곡시는 주자의 「무이도가」를 따르면서도 정구만의 독특한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주자의 「무이도가」에는 무이산이 가진 도가적 신선 사상이 일부분 나타나지만 정구의 구곡시에는 철저하게 배제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정구의 구곡시에는 무이산과 관련된 지명이 나타나지 않고 대가천의 실제 배경이 일부분 시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구의 구곡시 서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천하 산 중에 어느 곳이 가장 신령스러울까/ 인간 세상에 이처럼 그윽하고 맑은 곳 없다네/ 하물며 다시 주 부자께서 일찍이 노닐던 곳/ 만고 세월토록 길이 흐르는 도덕의 소리여[天下山誰最著靈 人間無似此幽淸 紫陽况復曾棲息 萬古長流道德聲].” 여기에서 정구는 주자가 은거하던 무이산을 칭송하고 주자를 존숭하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수를 보면 “구곡이라 머리 돌려 다시 탄식하노니/ 이내 마음 산천만 좋아함이 아니라네/ 샘의 근원에는 절로 형언 못할 묘리가 있어/ 이를 버려두고 어찌 별천지를 찾으리[九曲回頭更喟然 我心非爲好山川 源頭自有難言妙 捨此何須問別天].”라고 하였다. 정구는 구곡의 마지막 종착점에서 구곡을 유람한 것은 산천을 좋아해서만은 아님을 말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샘의 근원인 원두(源頭)를 떠올린다. 원두는 인간 심성의 근원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유가적 수양성이 강하게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정구가 성주 대가천 상류에 무흘정사를 짓고 은거하면서 주자의 「무이도가」를 화운하여 지은 「앙화주자무이구곡시운」 10수는 이후 정구의 후손들과 문인들에 의해 무흘구곡시로 인식되었고 수많은 차운시(次韻詩)[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지은 시]가 창작되었다. 대표적으로 정구의 후손이며, 조선 후기 성주의 문인인 정동박(鄭洞璞)[1732~1792]의 「무흘구곡운(武屹九曲韻)」이 있다.

[의의와 평가]

정구의 구곡시인 「앙화주자무이구곡시운」 10수는 주자의 「무이도가」를 화운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사후 정구의 후손들과 지역 문인들에 의해 무흘구곡시로 인식되었고, 무흘구곡을 중심으로 한 성주 지역 구곡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는 데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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