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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802
이칭/별칭 랑,레,구레,방아,방에,몰방이,연자매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고광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생활도구
재질
용도 곡식 도정용

[정의]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곡식을 장만하기 위해 몇몇 사람이 공동으로 설치해 놓은 큰 맷돌.

[개설]

몰방애는 연자매라고도 하며, 지역에 따라 ‘랑’, ‘레’, ‘구레’, ‘방아’, ‘방에’, ‘몰방이’라고도 불렸다. 몰방애는 탈곡한 보리나 조 등을 도정할 때 썼으며, 마을마다 4~5개씩으로 2~30호에 1개 정도가 있었으며, 이용하는 집들의 중앙에 위치하도록 마을 안의 사거리에 두었다.

제주도의 몰방애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 구조가 탄탄하게 꾸며졌고 조밀하게 분포한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농촌에서 평균 29가구 당 몰방애가 하나씩 설치되었을 만큼 몰방애가 흔했다. 둘째, 제주도에서는 계 조직에 의하여 몰방애가 설치·운용되는 등 자생적 협부기능(協扶機能)도 지녔다. 셋째, 제주도의 몰방애 집은 제주도 고유의 초가집으로 꾸몄다는 점이다. 제주도 애월읍 하귀리와 신엄리에 있는 방아는 중요민속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연원 및 변천]

‘방에’에 관한 기록으로는 『북학의(北學議)』에 ‘연마(連磨)’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778년 이전부터는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천의 경우 1948년에 정미소가 설립되어 1970년까지 이용된 것으로 보아 1950년대까지는 썼으나 점차 정미소가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형태]

몰방애는 위짝과 아래짝으로 이루어진다. 위짝은 아래짝에 세워놓은 ‘중수리’라는 기둥에 의지하여 돈다. 연자매를 돌릴 때 올려놓은 곡물은 ‘중수리’ 쪽으로 쏠린다. 그런 것을 한가운데로 쓸어내야 한다. 그 일을 두고 ‘혹 낸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몰방애는 조 이삭을 탈곡하는 일, 보리의 껍질을 벗겨 보리쌀을 만드는 일, 밭벼나 나락의 껍질을 벗겨 쌀을 만드는 일, 그리고 가루를 빻는 일을 이루어내었다.

서귀포시에서는 ‘방에’를 설치할 당시에 구성된 ‘방에 접’구성원들이 차례를 정해 방에를 사용했으며, ‘방에왕’의 지붕일기나 보수는 공동으로 하였다. 보통 마을 내에서도 동가름, 서커름, 웃카름, 알카름 등으로 갈라 작게 10호 이내 많게는 2~30호가 ‘접원’으로 구성되는데, 많은 곳에서는 “쌍방아”를 설치하여야 했다. 특히 만 평 이상의 농사를 짓는 부잣집에서는 ‘독방아’를 설치하여 사용했다.

‘웃돌’과 ‘알돌’을 마련하고 마을 안으로 운반하기 위해 전원의 접원이 동원되었으며, 이때 불렀던 ‘방아돌 굴리는 소리’가 남아 전해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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