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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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洞窟住居地 |
이칭/별칭 | 동굴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선사/선사,고대/고대 |
집필자 | 김종찬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대에 있는, 자연적·인공적 동굴을 이용한 살림터.
[개설]
동굴 유적은 전세계적으로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 유형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구석기 시대 이후에는 특수한 목적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동굴이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방어 장소나 자연 환경의 해악에 따른 피신 장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대부분의 유적은 석회암이 발달된 함경도·평안도·충청도 지방의 석회암 동굴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들 유적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상원 검은모루동굴을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의 구낭굴 조사까지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냄과 동시에,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부분의 유적은 구석기 시대가 중심이며 일부 신석기 시대 유적이 확인된다.
제주도는 육지부와 달리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지역으로 다수의 용암 동굴과 해식 및 하식 동굴이 섬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이 동굴들을 이용한 다수의 유적이 확인된다. 유적의 형성된 시기는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유적을 시작으로 탐라 시대까지 오래 동안 이용되며, 일부는 현대까지 간헐적으로 이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황]
현재까지 제주도에서 확인된 동굴 유적의 수는 40여개소가 있다. 제주도 북사면에는 용암 동굴 집중 분포 지대인 북촌리·선흘리·김녕리와 한림읍을 중심으로 용암동굴을 이용한 유적이 다수가 자리하며, 남사면에는 용암 동굴보다는 해·하식 동굴을 이용한 유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주도의 동굴 유적은 기존에 알려져 있는 동굴 입구 집자리, 바위 그늘 집자리[바위 그늘 주거 유적]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위 그늘 유적인 경우 전형적인 바위 그늘을 이용한 유적보다는 용암 동굴과 해·하식 동굴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동굴 유적의 주된 이용 시기는 구석기 시대에서 탐라 시대까지이며, 부분적으로 현대까지도 간헐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굴 유적의 전개 양상은 구석기 시대에는 해안 지역, 신석기 시대에는 해안에 떨어진 내륙에 가깝게 이용된다.
청동기 시대에 이르면 신석기 시대와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나, 보다 해안에 가깝게 위치한다. 탐라 시대 전기에 이르면 내륙과 해안의 모든 지역에서 다수가 확인되며, 탐라 시대 후기는 대부분 해안 단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귀포시의 동굴 유적은 대부분 하안 단애 또는 해안 단구에 형성된 해·하식 동굴을 이용한 유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유적은 중문동과 예래동, 색달동을 중심으로 다수의 동굴 유적이 군을 이루어 자리하고 있으며, 일부는 용암 동굴을 이용한 온평리와 신천리, 한남리 동굴 유적이 있다.
구석기 시대에는 동굴 유적을 정주거지로 이용하였고, 신석기 시대에는 야외 유적과 동굴 유적이 병존하나, 동굴 유적이 생활의 중심을 이루었다.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주거 생활의 중심이 동굴에서 야외 주거지로 이동되기 시작하며, 탐라 시대에는 동굴 유적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되면서 대규모 마을 유적의 부속 시설물로서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는 용도로 그 기능이 축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