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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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川里 |
이칭/별칭 | 내깍,냇기,내끼,천미,알내깍,신천미리,새내깍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상철 |
1946년 -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 신천리 개설 | |
1980년 -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 신천리에서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신천리로 개편 | |
2006년 -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신천리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로 개편 | |
소재지 | 신천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
성격 | 법정리 |
면적 | 9.88㎢ |
가구수 | 488가구 |
인구(남, 여) | 1,183명[남자 594명, 여자 589명]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신천리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가 확인되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과 어업을 주로 하는 반농 반어촌 마을이나 토질은 비옥하지 않다.
[명칭 유래]
신천리의 옛 이름은 ‘내깍’이며, 민간에서는 ‘냇기’ 또는 ‘내끼’라고 한다. ‘내의 끝’이라는 뜻이다. ‘천미(川尾)’는 ‘내깍’의 한자 차용 표기로, ‘내깍’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천미촌(川尾村)이라고 하였다. 18세기 후반에 ‘내깍을’ 중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알내깍[下川尾]’이라 하고, ‘알내깍을’ 중 내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을 ‘새내깍을’이라고 하였다. 신천미리(新川尾里)는 ‘새내깍을’의 한자 차용 표기로, 중간에 ‘미(尾)’가 생략되어 신천리(新川里)라 불린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신천리는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4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880년(고종 17) 정의현 좌면 신천리가 되었고, 1914년 신천리와 한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날의 신천리가 되었다. 1915년 5월 1일 도제(島制)가 시행되면서 제주도 정의면 신천리가 되었다.
1935년 정의면이 성산면으로 개칭되면서 제주군 성산면 신천리가 되었고,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 신천리가 되었다. 1980년 성산면이 성산읍으로 승격되어 성산읍 신천리가 되었으며, 2006년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통합되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 상동과 하동이 있다.
[자연 환경]
성산읍의 가장 서쪽 해안에 있는 마을로,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는 천미천의 말단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평지가 대부분이고 긴 해안선을 가진 반농 반어촌이다.
[현황]
2012년 4월 현재 신천리의 인구는 488가구, 1,183명으로 남자가 594명, 여자가 589명이며, 면적은 9.88㎢이다. 길게 접한 바다와 전복 양식장에서 해산물 생산이 풍부하며 자리돔과 해녀가 많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전체 면적 중 밭이 46%, 임야 31%, 과수원 20% 등으로 이용된다. 감자가 주요 재배 작물이며, 농지 전체 면적에 감귤 분야가 37%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 단체로는 마을회·노인회·청년회·부녀회·어촌계·잠수회·어부회가 있고, 교육 기관으로 풍천초등학교가 있다. 문화재로 천미 연대(川尾煙臺)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3호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