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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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爲美里 |
이칭/별칭 | 쉐미,뛔미,뛔밋개,우미촌(又尾村),우미포(又尾浦)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상철 |
194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위미리 개설 | |
1980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위미리에서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위미리로 개편 | |
200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위미리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로 개편 | |
행정구역 | 위미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1.43㎢ |
가구수 | 1,657가구 |
인구(남, 여) | 4,451명[남자 2,319명, 여자 2,132명]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위미리는 적어도 18세기 중반 이전에 형성되었다고 하며, 해안변에서 중산간 지역까지 길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명칭 유래]
위미리의 옛 이름은 쉐미, 뛔미, 뛔밋개라 부르고, 한자로 우미촌(又尾村) 또는 우미포(又尾浦)로 표기하였다. ‘우미’라는 명칭은 마을 북쪽에 큰동산·족은동산·쇠동산이 있는데 쇠동산의 지형 지세는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태이고, 족은동산은 소의 꼬리와 닮았다고 하는 데서 연유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면 안에 있는 마을들 이름이 일제히 바뀌면서 우미리(又美里)라 하였는데, 우(又)는 제주도 방언으로 ‘ㅼㅞ미, ㅳㅞ미, 뛔미’의 훈가자 표기이다. 현재의 명칭인 위미(爲美)는 ‘우미(又美)’의 우(又)가 위(爲)로 바뀐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위미리는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400여 년 전부터 해안 마을인 앞개골과 우뛔미[상위미] 일대, 동쪽의 동구동과 연듸골, 안카름 일대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며 마을이 커졌으며, 170여 년 전부터 위미2리 동쪽 연듸골 일대에도 마을이 형성되었다.
1895년(고종 31) 전국 23부 지방제도하에서 제주부 정의군 서중면 위미리가 되었으며,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위미리가 되었다.
1980년부터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면서 남원읍의 관할을 받았으며,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통합되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 위미1리의 명륜동·대화1동·대화2동·서성동·상위미동, 위미2리의 세천동·대원상동·대원하동·상원동·대성동, 그리고 위미3리의 종정동이 있다.
[자연 환경]
위미리는 해안선과 가까운 지역에서 해발 50m까지에 대부분의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해발 115m 정도에도 일부 취락이 나타난다. 고도에 따라 해안·취락·과수원·초지·산림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천은 전포천·종남천·동골세천 등이 있고, 앞바다에 음용수로 이용되었던 용천수가 있다. 해양성 온대 기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온화하여, 감귤·원예 작물의 노지 재배가 가능하다.
[현황]
2012년 4월 현재 인구는 1,657가구, 4,451명으로, 남자가 2,319명, 여자가 2,132명이며, 면적은 21.43㎢이다.
위미리 주민의 주된 소득원은 감귤 산업이며, 무인도인 지귀도 부근에서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기도 한다. 국가 어항인 위미항이 위치하고 있고, 위미리 903-6번지에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