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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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元里 |
이칭/별칭 | 쉘록개,쉘록깨,쉘롯개,쉘롣깨,제산잇개,제사닏깨,저사닛개,금로포,금록포,옷귀,옫뀌,옥기,옥끼,서옷귀,의귀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상철 |
194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남원리 개설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0년 - 제주 4·3 사건으로 폐허가 된 남원2리 재건 |
1980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남원리에서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남원리로 개편 | |
200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남원리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로 개편 | |
행정구역 | 남원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1,605가구 |
인구(남, 여) | 4,168명[남자 2,074명, 여자 2,172명]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남원1리의 옛이름은 쉘록개[쉘록깨], 쉘롯개[쉘롣깨], 제산잇개[제사닏깨·저사닛개]이다. 쉘록개의 한자 표기로 금로포·금록포 등이 있다. 남원2리의 원래 이름은 옷귀[옫뀌]·옥기[옥끼] 또는 서옷귀이다. 차자표기로 의귀촌이라 하였고, 18세기 초반부터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을 구분할 때부터 서옷귀을이라 하여 서의귀리 또는 서의리로 표기하였다.
[형성 및 변천]
남원리에는 일찍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흔적으로 유물이 확인되어 일찍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남원2리는 500여 년 전에 제주 고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하며, 남원1리는 지금의 남원2리에 살던 사람이 바닷가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여 120여 년 전부터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서의리라 하였는데, 1910년경에 서의리의 남쪽 지역을 남원리라 하였고, 1914년 남원리와 서의리를 병합하여 남원리라 하였다.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남원리가 되었으며, 1948년 남원2리는 4·3 사건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으나, 1950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1980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으며, 2006년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통합되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가 되었다. 2012년 현재 행정리로 남원1리, 남원2리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남원1리에 비안동·신성동·광지동·중앙동이 있고, 남원2리에 서의동·월산동·수은동이 있다.
[자연 환경]
남원1리는 동쪽으로 태흥1리, 서쪽으로 위미3리와 접하고 있으며, 남원2리의 동쪽에는 의귀리, 서쪽에는 위미3리, 북쪽에는 한남리와 접하고 있다.
중산간이 없는 지역으로, 해안변과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는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보여 온화한 날씨를 보인다. 평탄한 지형이 대부분이며, 해안절벽의 경관이 뛰어나다.
[현황]
2012년 4월 현재 총인구는 1,605가구, 4,168명으로, 남자가 2,074명, 여자가 2,172명이다. 기후가 온화하여 감귤 경작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과수원이 전체 면적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감귤 농업[하우스 감귤, 노지 감귤 등]에 종사하고 있다.
주요 기관으로 남원초등학교·남원중학교 등이 있다. 해안변 지역은 관광지구로 해안 지형은 큰엉 유원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영영화박물관과 금호리조트가 위치하고 있다. 문화재는 선광사 소장 목판본류 등 불경 전적 일괄[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총 59종 16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