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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시 월평리 출신 항일운동가. 강경호(姜景昊)는 1877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면 월평리 46번지에서 태어났다. 강경호는 1938년 부산에서 중일전쟁 시국에 관해 얘기하였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항일 운동가이다. 중일전쟁은 중국 내에서 반일운동이 거세게 전개되자 1937년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내전종식에 합의하고 일본의 침략에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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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군산 지역 만세 운동에 참여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출신 항일 운동가. 3·1운동 당시 군산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기독교계 학교인 영명학교와 구암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태생인 강규언(姜圭彦)은 기독교 신자로서 같은 제주 출신인 강문호(康文昊)와 함께 군산 영명학교에 다니던 중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때 일제에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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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출신의 강규언(姜圭彦)이 1919년 전라북도 군산[옥구]에서 3·1운동에 참여하다 검거된 사건. 제주도의 3·1운동은 제주 신좌면 조천리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이는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제주도 유지였던 최정식과 기독교 목사 김창국·윤식명·김정찬 등이 서로 뜻을 모아 만세운동을 계획한 데 있었다. 이후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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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대정읍 신평리 출신의 한학자. 강덕염(姜德炎)은 1905년 대정면 신평리 25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진주(晋州)이고, 아버지는 강두진(姜斗振), 어머니는 허성옥(許聖玉)이다. 강덕염은 서귀포시 대정 지역의 유림으로서 대정향교 전교(典校)로 활동하면서 대정향교가 6.25 전쟁과 사라호 태풍에 의해 많이 파손되자 향교의 보수 공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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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출신으로 광주학생운동 때에 활동을 한 항일 운동가.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있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전남 공립사범학교 학생 및 광주 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이 항일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 행진을 전개하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강문범(姜文範)은 제주 서귀포시 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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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 항일 독립 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 강문석(姜文錫)은 동아통항조합을 결성하여 일제수탈에 저항했고, 일본에서 항일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중국공산당 상해 한국인지부 책임자를 맡는 등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과 공산주의 활동을 지도하다 수차례 투옥되었다. 강문석은 1906년 제주특별자치도 대정읍 안성리 1661번지[추사적거지, 그의 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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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군산 지역 만세 운동에 참여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출신 항일 운동가. 3·1운동 당시 군산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기독교계 학교인 영명학교와 구암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태생인 강문호(康文昊)는 기독교 신자로서 같은 제주 출신인 강규언(姜圭彦)과 함께 군산영명학교에 다니던 중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고, 재판정에서도 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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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운동가. 강석만(康錫萬)은 1906년[추정]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하였다. 강석만은 제주 서귀포시 중문리 출신으로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 조직의 김한정(金漢貞)의 영향하에 활동하였다. 김한정은 당시 제주도 사회주의 운동의 최고 지도자였던 강창보와 함께 제주도 사회주의 운동자 간담회에 참여, 농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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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시 동홍동 출신의 독립운동가·교육자·현대 정치가.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아버지는 강문옥(姜文玉)이다. 일본명 송산금생(松山金生), 본명은 강붕해(姜鵬海)이다. 강성건은 후에 개명한 것이다. 1934년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서귀고등학교 교사로 재임하기도 하였다. 강성건(姜成健)은 조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 세례를 받았다. 1941년 10월, 강성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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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신천. 1888년 지금의 성산읍 수산리에서 강봉휴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승보(康承保)는 1925년에 창립된 정의면 중앙청년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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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의 무극대도교 교주로서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포교 활동을 전개한 종교인이며 항일 운동가. 강승태는 제주도의 무극대도교 교주로 신도들에게 일본 왕과 일본 군대를 비방하며 항일 의식을 고취는 포교 활동을 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신도 350여명과 함께 검거되어 투옥되었다. 강승태는 제주도의 무극대도교 교주로 1936년 1월부터 1937년 12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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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학생운동가. 본관은 신천. 1924년 서귀면 법환리 1369번지[지금의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강성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시검(康時儉)은 어릴 때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낮에는 선반공으로 노동을 하며 흥국상업학교 야간부에 재학하였다. 평소 민족 의식이 강하여 민족 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42년 9월경 학우인 이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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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대정읍 동일리 출신의 유림·정치가. 강영술(姜榮述)의 자는 자행(子行), 호는 남호(南湖)이다. 1890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2863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晋州)이고, 아버지는 강여진(姜呂眞), 어머니는 문씨이다. 그의 집안은 구한말 이래 유림 집안이다. 강영술은 광복 후 대정 면장을 역임하면서 4·3 사건 당시 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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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제주 민란[신축 민란] 당시 민군의 대장. 1901년 제주 민란은 토착 신앙이 전통 종교였던 제주도 민중들의 외래 종교인 천주교에 대한 반감, 제주도 경제권을 둘러싼 토호 세력과 중앙에서 파송한 봉세관과의 갈등 등이 원인이었다. 1901년 1월 봉세관 강봉헌(姜鳳憲)이 세금 징수로 민중들을 착취할 때, 천주교 신자인 최형순(崔亨淳)이 실무를 맡은 것이 사건의 시작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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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시 법환동 출생으로 서귀리 독서회 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1912년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출생한 강원화는 일제 강점기 때 이른바 “서귀리 독서회 사건”인 서귀포 야학강습소의 항일 활동을 하였다. 어릴적 1년 동안 한문을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0년 일본 오사카의 작침야학소(爵枕夜學所)에서 2년간 일본어를 배웠다. 와세다(早稻田) 『중학강의록』 제1학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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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후계 학생전위동맹 활동을 한 서귀포 출신 항일운동가. 1929년 광주학생운동 이후 학생들은 전국 각지역에서 학생전위동맹을 결성, 광주학생운동으로 체포된 학생의 석방을 위해 격문을 작성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발각되어 조직이 해체되었는데, 이를 계승하여 후계 학생전위동맹이 결성되었다. 후계 학생전위동맹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과 조선에서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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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1925년에 고은삼(高殷三)의 영향 아래 활동하던 정의면 중앙청년회는 제주성내청년회·모슬포청년회와 함께 제주도 내 여타 청년회보다 민족주의적이고 잘 단합되었다. 특히 성산포 일대는 일본과 가까워서 일본배가 자주 노략질을 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상태였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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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 야체이카 조직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운동가. 강인화(姜寅華)는 1901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 조직의 김한정(金漢貞)의 영향하에 활동하였다. 김한정은 당시 제주도 사회주의 운동의 최고지도자였던 강창보와 함께 제주도 사회주의 운동자 간담회에 참여 농민 문제·여성 문제 등의 운동 방법을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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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 공산당 활동을 통해 민족해방운동을 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1912년 서귀포시 상예리 4435번지에서 출생한 강주호(姜周鎬)는 1929년 일본으로 가서 1931년 12월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전협] 화학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일본 공산당이 1931년 조선과 대만 등의 완전독립을 정치 강령에 두고 당 중앙에 민족부를 설치하여 일본 공산당이 조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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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운동가. 본관은 곡산. 1892년 지금의 성산읍 온평리에서 면서기 강항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선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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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서의 항일 운동가. 본관은 곡산. 1874년 지금의 성산읍 온평리에서 강흥표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선원들이 씨름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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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의 항일 운동가. 1916년 안덕면 감산리 6번지에서 태어난 고계수(高啓洙)는 어려서부터 일본으로 건너가서 공장 직공으로 생활하였다. 1943년 고계수는 알고 지내던 마츠야마 히로시라는 일본인 친구가 그의 장인과 혼인 중매자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친구를 대신해서 두 사람을 형사처분하고자 일본 경찰의 특고과에 투서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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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계림동지회에 참여하여 민족의식 함양에 노력한 서귀포시 성산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계림동지회는 1940년 5월 초 일본 오사카에서 제주 출신의 김봉각(金奉珏) 등이 항일독립운동 단체 결성에 뜻을 두고,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에 유학 중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관한 제반 정세를 분석, 연구 검토하고, 회원간의 민족의식 앙양 및 단결을 도모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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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서귀포 출신의 항일운동가·의사·여성운동가. 고수선은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가·교육자로 활동하였고, 광복 후에는 의료인, 여성권익신장을 위한 여성운동가·정치가·사회사업가·문화예술단체지도자로 활동하였다. 고수선[1898~1989]은 구한말인 1898년(광무 1)에 대정읍 가파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호는 우인(又忍)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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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1872년 성산면 오조리 156번지에서 태어난 고승운(高承雲)은 1925년에 창립된 정의면 중앙청년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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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고정화(高定華)는 1903년 구좌읍 우도에서 태어나 성산면 성산포에서 상점의 점원 일을 하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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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고태영(高泰英)은 1891년 성산면 오조리 700번지에서 고승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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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고휴규(高烋圭)는 1884년 성산면 수산리 1457번지에서 고익량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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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의 패전에 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고봉규·현문옥·박계호·오남학이 검거된 사건.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1945년 9월 2일에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종결되었다. 일본은 ‘본토 결전’ 시기 즉, 전쟁에서 패전하기 전까지 제주도를 일본 본토 방어의 최후 보루로 삼아서 군사 요새화하였고, 이에 섬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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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시 상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경득(金庚得)은 1913년 6월 10일에 서귀포시 상예동 1319번지에서 김승옥(金升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일본명은 마츠모토[松本庚得]이다. 김경득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가 신발공장에서 직공(織工)으로 일하였다. 2년 뒤인 1932년 6월에 일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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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경주. 1908년 성산면 난산리 555번지에서 김학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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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김경춘(金庚春)은 1902년 성산면 시흥리에서 태어나 자란 후에 온평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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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정면 출신의 해방 정국의 사회주의 활동가. 김달삼(金達三)은 1943년 4월 교토[京都] 성봉중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도쿄[東京]중앙대학 전문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제주 4·3 사건 당시 인민해방군 사령관이었으며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조직부장이었다. 그리고 1948년 8월 해주에서 개최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제주 대표로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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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있는 의병 김만석의 묘. 제주읍 이도리 동광양 출신의 김만석은 고사훈이 1909년 2월 25일[음력 2월 6일]에 이도리 광양의 조인관의 집에서 창의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할 때 참가하였다. 당시 1909년 제주의병의 창의자는 모두 10명이었으며, 이 자리에서 거사 날짜를 1909년 3월 3일[음력 2월 12일]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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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광산. 1886년 성산면 고성리 545번지에서 김명황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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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김해. 1891년 성산면 수산리 591번지에서 김한돌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묘득(金卯得)은 1925년에 창립된 정의면 중앙청년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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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대정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무안(金務安)[1913~?]은 1913년 가파리 467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아버지는 김성문이다. 독립운동가 회을 김성숙이 그의 5촌 당숙이다. 김무안은 5촌 당숙인 회을 김성숙이 세운 신유의숙을 거쳐 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1932년 실업전수학교에 재학중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이 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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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여수 학생 항일 운동에 참여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본관은 경주. 1910년 서귀포시 성산면 신산리 568번지에서 김영두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봉칠(金奉七)은 향리에서 공부한 뒤 여수공립수산학교로 진학하여 여수시 동정에서 살면서 공부하였다. 같은 학교 선배 윤경현의 권고로 비밀모임인 여수수산독서회 창립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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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경주. 1902년 성산면 성산리 135번지에서 태어나 마을에서 자전거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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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김성수(金成洙)는 1886년 중문면 월평리에서 태어났다.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은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 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마을 주민 등 700여 명의 시위대는 사전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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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김성진(金聖辰)은 1901년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면 내향리에서 태어나 생활근거지를 제주도 성산면 고성리로 옮겨 수육 판매에 종사하였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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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학생 운동가. 본관은 경주. 1908년 서귀포시 남원면 남원리 630번지에서 김계윤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순희(金淳熙)는 1929년 3월 말경 서울의 사립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정관진·김태래·한경석 등과 함께 1927년 3월 조직한 비밀 결사 조선학생혁명당을 조선학생전위동맹으로 확대 개편하고 중앙 집행 위원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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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김영화(金英和)는 구좌면 종달리에서 태어나 성산포에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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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시 월평동 출신의 독립운동가·교육자. 김우평은 1917년 당시 제주도 중문면 월평리 4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이후에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읍 내덕리 131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김우평은 금본우평(金本宇平)으로 창씨개명하였고, 김상호(金相昊)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1942년 나이 25세로 청주공립사범학교[현재 청주교육대학교]에 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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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대정면 신도리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 김익휴(金益休)[1913~1986]는 1913년 대정면 신도리 1433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아버지는 김여찬(金汝燦)이다. 김익휴는 고향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2년간 수학하고, 1923년 4월부터 바로 이웃마을인 무릉리의 개량서당 의문서숙(疑問書塾)에서 3년 동안 신학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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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 활동가. 본관은 경주. 1873년 서귀면 호근리 1729번지에서 김여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 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 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강승태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 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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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광산. 1902년 성산면 오조리 916번지에서 김봉조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자생(金子生)은 1925년에 창립된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중앙청년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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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무극대도교의 신도로서 활동한 항일 운동가.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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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본관은 경주. 일명 김백옥. 1897년 서귀포시 중문면 중문리 2030번지에서 김성규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자 조선독립희생회 소속 김창규는 그해 5월 서울에서 최정식·조봉호와 접촉하여 독립희생회를 제주 지역에 조직해 줄 것과 회원 1인당 2원씩 군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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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 일제 강점기 3·1 운동에 참가한 후 제주청년동맹·신인회·제주야체이카 등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해방 후인 1945년 10월 9일 건국준비위원회 제주도위원회 보안부장을 맡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다. 1946년 10월 미군정이 지명수배하자 경남 삼천포[여수라는 설도 있음]로 도항하던 중 침몰 사고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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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독립운동가. 1907년 4월 16일에 대정읍 신도리 1618번지에서 김석주(金錫柱)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희봉의 일본명은 마츠나가[松永喜奉]이다. 제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동맹휴학(同盟休學) 사건으로 2학년 재학 중 퇴학되었다 1926년 6월 25일 일어난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 휴학 사건은 제주도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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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출신 학생들이 ‘만보산 사건’을 규탄하는 격문을 제작 살포한 사건.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 규탄 격문 배포 사건은 김만유·이갑문·김무안 등 서귀포 출신 3명의 학생과 홍병모·최금경·이동재·강정수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항일 운동이다. 이들은 1931년 5월부터 발생하여 7월에 절정이었던 소위 ‘만보산 사건’에 대하여 일제가 배후에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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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서의 항일 운동가. 본관은 밀양. 1905년 성산면 온평리에서 태어난 박군평(朴君平)은 1925년에 창립된 정의면 중앙청년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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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밀양. 1897년 성산면 오조리 765번지에서 박능주의 아들로 태어나 성산면 성산리에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박규언은 1925년에 창립된 정의면[성산면] 중앙청년회의 총무를 맡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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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출신의 항일운동가. 박남호(朴南浩)는 1911년 대정면 보성리 1632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아버지는 박평준(朴平準)이다. 박남호는 고향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대정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大阪)에서 철공소 직공으로 일하면서, 일본에 있던 제주 출신들과 동아통항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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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거주한 항일 의병. 박응천(朴應天)은 1887년 전라남도 나주군 왕곡면 구천리 2124번지에서 박문홍(朴文弘)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1909년에 일제에게 강제로 을사조약을 당한 통분으로 전라남도 나주에서 봉기한 의병장 권택(權澤)의 휘하에서 항일 운동을 하였다. 1908년 12월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포의 이순흥(李順興)이 당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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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박주홍(朴周洪)은 1900년 조천면 조천리에서 태어나 성산면 성산포에서 과자상을 하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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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독서회 활동을 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원주, 1916년 서귀면 법환리 388번지에서 변용화의 아들로 태어났다. 변성현(邊聖現)은 1931년 3월 서귀공립보통학교 6학년을 졸업하고 법환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32년 1월부터는 홍순성·윤태석·강봉주 등과 모임을 가지면서 사회 과학 서적을 탐독하였다. 1934년부터 야학을 실시하면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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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1917년 서귀면 서홍리에서 태어난 변시민(邊時敏)은 1941년 일본 석천현(石天縣) 김택시(金澤市)에 있는 제4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당시 조선인 학생들의 좌익 사상 연구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2월 8일에 검거되어 3월 8일에 검찰국으로 넘겨졌다가 신병 때문에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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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부정휴(夫丁休)는 1907년 성산면 시흥리 547번지에서 부남규의 아들로 태어나 상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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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1910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2077번지에서 부달화(夫達化)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태환(夫泰煥)은 1925년 3월에 대정(大靜)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로 진학하였다. 당시 재학 중 부태환은 최우등생이었으나 항일문(抗日文) 투고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졸업 직전인 1928년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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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송순혁 외 3명이 서귀리 독서회를 조직하여 계몽활동을 벌이다 검거된 사건. 1920년대 제주에서의 청년운동은 일제의 청년동맹에 대한 감시와 탄압으로 말미암아, 점차 지하운동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고, 1920년 말부터 1930년대 초에 이르면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해방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제주의 경우, 일본 특히 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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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달오(宋達五)는 1910년 서귀포시 서귀동 454번지에서 송봉주(宋奉柱)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송달오는 1931년 3월 서귀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상경하여 경성고학당(京城苦學堂)에 입학하였다. 이곳에서 1학년 1학기를 수료하고 자퇴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송달오는 오사카(大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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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청진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본관은 여산. 1917년 성산면 온평리 943번지에서 송봉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송문관(宋文寬)은 1940년대 함경북도 청진시 강덕동에 살면서 이발업을 하고 있었다. 송문관은 이발하러 온 손님들에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전황이 불리하여 곧 패망하고 조선은 독립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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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여산. 1907년 성산면 온평리 934번지에서 송봉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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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은진. 1897년 성산면 성산리 204번지에서 송재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건 당시 행정 대서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송세훈(宋世勳)은 1925년에 창립된 정의면[성산면] 중앙청년회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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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서귀동 출신으로 서귀리 독서회 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1910년 서귀포시 서귀동 454번지에서 송문준(宋文準)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송순혁은 1927년 서귀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졸업한 후 고두호(高斗湖)주류판매소의 점원을 거쳐 농사일에 종사하였다. 1931년에는 이도백(李道伯)·안군오(安君五)의 지도교양을 받아 사회과학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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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노동 운동가. 송정권(宋政權)은 1910년 서귀면에서 태어났다. 서귀보통학교를 2년 수료한 뒤 1926년 9월 일본으로 건너가 고무 공장에서 일하며 가도(加藤) 고무공장노동조합 분회에 소속되어 노동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9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일본화학 고베(神戶) 서부지구 준비위원회 청년부 서기구의 책임자를 맡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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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여산. 일명 송태선. 성산면 온평리 587번지에서 송완천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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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여산. 성산면 온평리 925번지에서 1910년 송서춘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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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0월 22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출신의 송희경이 모슬포항에서 모슬포 비행장의 군사적 중요성을 말하다가 검거된 사건. 송희경은 제주 서귀포 대정읍 무릉리 출신으로, 1927년경 돈을 벌기 위해 어미와 처자식 6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제주에 있는 할아버지의 대상(大祥) 및 가사 정리를 이유로 일시 제주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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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성숙(金成淑)이 설립한 학교 터. 일제 강점기에 3·1 운동으로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경성고보에서 퇴학을 당한 회을 김성숙이 귀향하여 민족혼을 일깨우며 교육을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세운 학교가 신유의숙이다. 김성숙은 이곳에서 ‘1리 1학교 1청년회’세우기, ‘한글을 통해 문맹 퇴치하기’, ‘무궁화 정신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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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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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안덕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6년 2월 1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1934번지에서 양군석(梁君錫)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양기형(梁基亨)의 일본명은 기요하라[靑原邦夫]이다.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사립 고노하나(此花)상업고등학교 3년을 신문배달을 하여 수료하였다. 양기형은 성장하면서 민족 문제에 대한 강한 의식을 품게 되고 193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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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무극대도교 신도로서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광산. 1888년 남원면 신예리 1366번지에서 양성택의 아들로 태어난 양창언(梁昌彦)은 수년간 한문을 수학한 후, 1917년경 민족 종교인 보천교를 믿었으나 중도에 그만두었다. 1936년 9월 강석구의 권유로 무극대도교를 믿게 되어 도사(道師) 및 남궁원수(南宮元帥)의 칭호를 받고 포교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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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여수수산학교 독서회 소속 서귀포 출신 학생들이 일제에 검거된 사건. 정의면 신산리[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신산리] 출신의 여수수산학교 3학년[당시 22세] 김봉칠(金奉七) 등 여수수산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독서회로, 사유재산제도의 타파와 공산주의 사회의 수립을 목표로 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 함양 및 실행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였다. 1930년 3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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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 오대진은 일제 강점기 3·1 운동에 참가한 후 제주청년동맹·제주야체이카[혁우동맹] 등에서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후인 1945년 10월 9일 건국준비위원회 제주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1947년 2월경 결성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제주도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다.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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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제주 민란[신축 민란] 당시 민군의 대장. 1901년 제주 민란은 토착 신앙이 강한 제주도 민중들의 외래 종교 천주교에 대한 반감, 제주도 경제권을 둘러싼 토호 세력과 중앙에서 파송한 봉세관과의 갈등 등이 원인이었다. 1901년 1월 봉세관 강봉헌(姜鳳憲)이 세금 징수로 민중들을 착취할 때, 천주교 신자인 최형순(崔亨淳)이 실무를 맡은 것이 사건의 시작이 되었다.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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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군위. 1897년 성산면 난산리 1121번지에서 오윤흡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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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은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 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 마을 주민 등 700여 명의 시위대는 사전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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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운동가.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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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의 항일 학생 운동가. 본관은 군위. 1923년 당시 서귀면 토평리 2250번지에서 오성태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유붕(吳維鵬)은 일찍이 서귀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거주하며 낮에는 동맹통신사 창고계에 근무하고 밤에는 와세다실업학교 야간부에 다녔다. 같은 학교의 김신형[일명 김굉가]의 지도로 일본인의 민족적 차별 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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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운동가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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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군위. 1881년 당시 성산면 신풍리 810번지에서 태어났으며 면서기로 재임하였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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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군위. 1896년 당시 성산면 오조리 108번지에서 태어나 목수일을 하였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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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군위. 1903년 당시 성산면 오조리 666번지에서 오석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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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대정 지역 4·3 무장대 대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1912년 4월 5일생으로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163번지에서 유달삼(柳達三)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신출(柳辛出)은 대정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토목공으로 일하였는데, 당시 재일한인들은 일제 강점기에 경제난에 허덕이며, 고향에서 특별한 기능을 습득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건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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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 규탄 운동을 한 서귀포 출신의 여성 항일 운동가. 만보산 농민 학살 사건은 1931년 조선의 농민들이 일본의 허가로 중국 만주의 만보산 지방 토지를 개간하여 이용하게 되었는데, 토지 개간 공사 중 관개 수로 공사와 제방 축조로 인하여 인근의 농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어 중국 농민들과 충돌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중국인 농민을 무차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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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 항일 운동가. 본관은 고부이며 이원옥의 아들로 1909년 대정읍 가파리에서 태어났다. 이도백(李道伯)[1909~?]은 1923년 대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4학년때인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영향으로 퇴학을 당하였다. 그 후 서울의 경성고학당을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다 중퇴하였다. 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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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민족 종교 항일 운동가. 본관은 고부. 1895년 중문면 강정리 5428번지에서 이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두생(李斗生)은 고향에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면서 1919년부터 2년간 보천교를 믿은 적이 있었다. 1935년 7월 하순경 전라남도 순천군 별량면 학산리에서 미륵교 지로사(指路師) 김형오가 제주도에 들어와 아라리 월전암에서 설교할 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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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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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항일 운동가. 이봉춘(李奉春)은 1914년 당시 중문면 중문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초반 중문리에서 항일 청년 운동을 지도하던 김한정(金漢貞)의 영향 아래 활동하였다. 1931년 11월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봉춘은 부경득의 친구들인 청년 운동가 김한정·안구현·강석만·강인화·윤창석 등과 함께 부대혁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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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운동가.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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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전주. 1904년 당시 성산면 시흥리 615번지에서 이영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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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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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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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제주 민란 당시 민군의 대장. 1901년 제주 민란은 ‘신축 민란‘ 또는 ‘이재수의 난‘이라고도 하며 최근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민란이 발생했던 1901년 당시 제주도민들은 일본 어민의 어장 침탈과 서울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횡포, 왕실 세금을 거두로 내려온 봉세관의 무리한 세금 부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여기에 전통 신앙을 중시하는 제주도민과 외부 종교인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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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학생전위동맹에서 활동한 제주도 서귀포 지역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9년 광주학생항일독립운동 이후, 학생전위동맹을 중심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검거당한 학생의 석방과 나아가서는 ‘조선 독립’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학생들의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여세를 몰아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려고 서울 시내 각 학교에 격문을 배포하고 동맹휴학 시위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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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은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 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마을 주민 등 700여 명의 시위대는 사전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곤봉과 화승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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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고성. 1890년 당시 성산면 온평리 581-1번지에서 이봉조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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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운동가.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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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정기혁(鄭岐赫)은 1891년 당시 성산면 고성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선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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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동래. 1909년 당시 성산면 고성리 1431번지에서 정신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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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 주최로 열린 대운동회에서 정의면 청년들과 일본인 선원 간에 싸움이 벌어진 사건. 제주 성산면 성산리 성산포 근처는 우도와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황금어장을 이룰 만큼 어족 자원이 풍부하였다. 이에 옛날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 시기에는 일본 어부들이 제주 근해에 상륙하여 불법 어업을 감행하고 어장 침탈을 행하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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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주도 전역의 청년단체들이 설립한 사회주의 연합 단체. 제주청년연합회는 제주청년운동의 조직적 통일을 기하고 자주적 교양과 단결적 훈련을 기함을 강령으로 채택하였다. 가입 단체로는 가파청년회·모슬포청년회·온평청년회·서귀포청년회·함덕협성청년회·신촌청년회·화북청년회·제주청년회 등이었다. 집행위원회는 김한정·오대진·고은삼·송정옥·김석호·김형계·강원전·김병훈·김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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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항일 노동운동가. 본관은 풍양. 1908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872번지에서 조동권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초대 표선면장을 역임한 조범구의 아우이다. 조몽구(趙夢九)는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반일투쟁으로 동맹 휴학을 선동하여 퇴교 처분을 받았다. 21세 때인 1928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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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청주. 1907년 현재의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3032번지에서 좌달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명으로 좌혁상·김용식 등을 썼다. 9세부터 14세까지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하고 15세 때 대정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하여 1922년 같은 학교 4학년에 중퇴하였다. 이후 가업을 돕다가 1924년 오사카로 건너가서 자유노동에 종사하였다.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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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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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 학생들이 관련된 ‘조선학생전위동맹’ 사건. 조선학생전위동맹은 레닌주의에 입각하여 제국주의 교육에 항쟁한다는 등의 강령을 바탕으로 학생의 언론·집회·출판의 자유 획득, 학문의 연구 및 비판의 자유 등 민주적인 내용을 행동 강령으로 조직된 사회주의적 학생 조직이다. 김순희(金淳熙)·송건호·김인배 등 제주 서귀포 출신이 주축을 이루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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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노동 운동을 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본관은 청주. 1908년 당시 성산면 고성리 606번지에서 한승훈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봉삼(韓奉三)은 성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5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에 종사하였다. 1932년 4월 전협(全協) 화학노조 오사카지부 동(東)지구에 가입하였다, 1932년 4월 22일 오사카 니시요도가와구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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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한성옥(韓成玉)은 1882년 표선면 성읍리에서 태어나 성산면 온평리 마을에 살았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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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한승택(韓承澤)은 1904년 당시 성산면 고성리 2077번지에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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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청주. 1909년 당시 성산면 수산리 214번지에서 한태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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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현순창(玄順昌)은 1921년 당시 서귀면 하효리 258번지에서 현행웅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관서학원 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무직으로 고베시에 살았다. 학교에 재학 중일 때 친구 장세영과 어울리며 조선의 사회 실정이 비참한 이유는 일본의 식민지이기 때문이라는 데 동감했다. 그 뒤 일본인 사상가 히라우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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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연주. 1906년 당시 성산면 온평리 549번지에서 현창곤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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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제주도 서귀포 출신 항일 노동운동가. 1910년 1월 18일 성산읍 성산리 출생.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할아버지는 현승오, 아버지는 1930년대 동아통항조합장을 지낸 현길홍이다. 형 현호진과 누이동생 현호옥도 노동운동가이다. 현호경(玄好景)[1910~1949]은 사상적으로 김문준의 영향을 받았으며, 중학교 졸업 학력의 토목노동자로 일명 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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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노동 운동가. 1913년 출생.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할아버지는 현승오, 아버지는 1930년대 동아통항조합장을 지낸 현길홍이다. 오빠 현호진과 현호경도 노동 운동가이다. 현호옥(玄好玉)은 성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 야간부에 다니면서 자전거공장 여공으로 일하였다. 오빠 현호경의 영향을 받아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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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 항일 노동 운동가. 본관은 연주. 1907년 당시 성산면 성산리 236번지에서 현길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현호경·현호옥도 노동 운동가이다 현호진(玄好珍)은 성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5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동생 현호경·현호옥 남매와 함께 노동 운동을 통해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0년 11월 일본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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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남양. 1895년 당시 성산면 오조리 836번지에서 홍지훈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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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홍두진(洪斗珍)은 1893년 당시 성산면 고성리 2구에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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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홍종학(洪鍾鶴)은 1900년 당시 성산면 성산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선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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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창원. 1885년 당시 성산면 시흥리 779번지에서 홍문표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 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 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