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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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若銓 |
영어공식명칭 | Jeong Yakjeon |
이칭/별칭 | 천전(天全),손암(巽庵),연경재(硏經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재영 |
출생 시기/일시 | 1758년 - 정약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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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83년 - 정약전 사마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790년 - 정약전 증광문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90년 - 정약전 승문원부정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797년 - 정약전 성균관전적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798년 - 정약전 병조좌랑 제주 |
활동 시기/일시 | 1798년 - 정약전 『영남인물고』 편찬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801년 - 정약전 신유사옥으로 신지도에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816년 - 정약전 사망 |
출생지 | 마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
유배|이배지 | 신지도 -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 |
유배|이배지 | 흑산도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
묘소|단소 | 정약전 묘소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우산리 500] |
성격 | 문신|천주교도 |
성별 | 남성 |
본관 | 나주(羅州) |
대표 관직 | 병조좌랑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이자 천주교도.
[가계]
정약전(丁若銓)[1758~1816]의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천전(天全), 호는 손암(巽庵)·연경재(硏經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항진(丁恒鎭)이며, 할아버지는 정지해(丁志諧)이다. 아버지는 진주목사 정재원(丁載遠)이고, 어머니는 윤덕열(尹德烈)의 딸 해남 윤씨(海南 尹氏)이다. 이복형은 정약현(丁若鉉), 동생은 정약용(丁若鏞)·정약종(丁若鍾)이다.
[활동 사항]
정약전은 1758년(영조 34)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리에서 태어났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7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에 임명되었다. 1797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1798년 병조좌랑(兵曹佐郞)에 올랐으며 1798년 왕명으로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를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정약전은 앞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 동생 정약용과 함께 정조의 후의를 입으면서 비교적 순탄한 행보를 밟았다. 정약전의 과거 시험 답안이 서양의 사행설(四行說)을 취한 것이라고 비판받을 때 정조가 직접 답안을 검토하여 변호하기도 하였다. 정조가 사망한 뒤 남인 계열 인물들은 천주교와의 연관으로 말미암아 정계에서 축출되었는데, 정약전도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으로 신지도(薪智島)에 유배되었다. 곧이어 조카사위 황사영(黃嗣永)의 백서(帛書) 사건으로 인하여 서울로 재압송되어 국문을 받았고 흑산도(黑山島)에 다시 유배되었다. 이때 동생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유배 초기에는 당시 ‘내흑산(內黑山)’이라 불리던 우이도(牛耳島)에서 지내다가 흑산도로 옮겼다. 이후 정약용이 해배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우이도로 나왔으나 정약용을 만나지 못하고 1816년(순조 16) 우이도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약전은 1776년(영조 52) 아버지 정재원이 호조좌랑이 되어 서울에 거주하게 되면서 이윤하(李潤夏)·이승훈(李承薰)·김원성(金源星)과 교유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이익(李瀷)의 학문을 이은 권철신(權哲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사돈이었던 이벽(李檗)의 영향으로 천주교를 접하였으며 1784년(정조 8) 이벽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동생 정약종을 천주교로 인도하고 외종사촌 윤지충(尹持忠)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초기 천주교회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하던 정약전은 1787년 반회사건(泮會事件)으로 천주교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고 천주교와 인연을 완전히 단절한 것은 진산사건이 일어난 1791년(정조 15)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현전하는 정약전의 저술은 모두 흑산도 유배 생활 중에 완성되었다. 『논어난(論語難)』·『동역(東易)』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책은 『자산어보(玆山魚譜)』, 『송정사의(松政私議)』·『표해록(漂海錄)』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대표적인 저술로 알려져 있으며 해양 박물학적 특성을 띤 어류 서적이다. 『송정사의』는 국가의 산림 정책이 갖는 문제점과 그에 따른 백성의 고통 및 정약전이 해결책으로 상정한 대안을 정리한 책이며, 유배되었던 서남해안 도서 지역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표해록』은 우이도에 살던 어상(魚商) 문순득(文淳得)의 표류 경험담을 정약전이 대필한 기행록이며, 중국·안남·유구 등의 언어와 풍속을 담고 있다.
[묘소]
정약전의 묘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의 천진암 성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