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1336
한자 文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장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 문학 조지훈문학제 제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 문학 남양주다산문학상 제정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에서 문자나 언어를 통하여 사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예술 행위.

[남양주 문학의 역사 시대적 배경]

남양주는 1980년 양주군에서 분리되었고,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통합되어 남양주시가 되었다.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독립한 역사가 길지 않은 지역이다. 전근대 시기에는 양주에 밀접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하여 행정구역이 복잡한 양상을 띤다. 따라서 남양주 단독의 문학보다는 인근 지역과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양주만의 독자적인 문학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기는 하여도 남양주의 문학은 실재하고 있다.

남양주 지역은 선사시대 유적부터 조선 왕조의 왕릉이 모여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특히 조선 7대 왕 세조(世祖)[1417~1468]의 무덤 광릉(光陵)을 필두로 하여 광해군(光海君)[1575~1641]의 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묘를 포함하여 조선 시대에 왕릉 후보지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한강(漢江)이 남양주를 관통하기 때문에 곳곳에 포구와 나루가 이어져 있었다. 비교적 강을 이용한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한양을 오가는 다양한 물자가 쌓였다. 따라서 물자가 쌓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여지면서 각계각층의 인물이 모였고, 당대의 문인과 학자가 별장과 주거지를 형성하게 되었다. 문인들은 단순히 교통이 편리하였기 때문에 모인 것은 아니다. 당시에 남양주가 ‘한강 제일의 경관’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15세기 성현(成俔)[1439~1504]은 자신의 문집인 『허백당집(虛白堂集)』에 「배광릉(拜光陵)」이라는 시를 지어 수록하였는데, 경기도 남양주시의 광릉을 방문하고, 세조를 기억하는 내용의 한시이다.

[조선 시대 남양주 문학]

조선 초기부터 남양주에는 유명한 명사가 모였다. 17세기 소암(疎庵) 임숙영(任叔英)[1576~1623]이 남양주 인근으로 낙향하며, 한강을 중심으로 양근(楊根)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 등과 ‘수상칠인(水上七人)’으로 교유하며 학문과 문학을 공유하였다.

조선 초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경기도 남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존재하여 인근 사림(士林)의 중심이 되었다. 안동 김씨(安東 金氏)의 일원인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청음집(淸陰集)』에 남양주의 봄을 한시로 표현한 「차조춘운(次早春韻)」이 수록되어 있고,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金壽恒)[1629~1689]의 『문곡집(文谷集)』 등에 석실서원에 방문한 것을 한시로 지은 「걸가성묘 숙석실석원(乞暇省墓 宿石室書院)」, 석실서원 인근의 미호(渼湖)에 대하여 지은 「미호교거 차박사암운(渼湖僑居 次朴思菴韻)」과 같은 한시가 남아 있다. 석실서원은 실학자 홍대용(洪大容)[1731~1783], 황윤석(黃胤錫)[1729~1791]과 같은 실학자를 배출하기도 하였고,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도 석실서원 출신인 김원행(金元行)[1702~1772]에게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남양주에서 활약한 학자와 문인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지만, 그중 괄목할 만한 사람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다.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그린 「팔도지도(八道地圖)」, 인근의 학자인 정상기(鄭尙驥)[1678~1752]가 그린 「동국지도(東國地圖)」를 들고 남양주 주변의 지형과 역사를 조사하고 다닐 정도로 남양주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마재마을[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 무쇠로 만든 말 동상을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 마을이라는 것을 밝히기도 하였다. 정약용은 인근 지역의 자연환경을 시로 표현하기도 하여 남양주 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남양주의 문학뿐만 아니라 조선의 문학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약용은 한시의 격률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문학의 독립을 꿈꾸었다. 그래서 지역 방언을 한자화하여 시어로 사용하기도 하고, 『비어고(備禦考)』, 『대동수경(大東水經)』 등을 통하여 우리가 중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고 있음을 밝혔다.

[조지훈과 남양주의 문학]

남양주는 조지훈(趙芝薰)[1920~1968]과 인연이 있는 지역이다. 조지훈의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며,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지만, 성장한 후 보통학교를 3년 다니고 1941년 21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전문학교를 졸업한 1941년에는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에서 불경과 당나라 시를 읽으며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월정사의 경험으로 인하여 1939년 발표한 「승무(僧舞)」, 1940년에 발표한 「봉황수(鳳凰愁)」에 한국 고유의 정서와 미의식이 나타났다. 이후 조지훈은 박목월(朴木月)[1915~1978], 박두진(朴斗鎭)[1916~1998]과 더불어 1940년을 대표하는 청록파(靑鹿派) 시인으로 불렸다. 아울러 조지훈은 문학뿐 아니라 국문학 연구에서도 두각을 발휘하였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서 『큰사전』을 만들 때 편찬 위원이 되었고, 전조선문필가협회(全朝鮮文筆家協會)와 조선청년문학가협회(朝鮮靑年文學家協會)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말년에는 시를 짓기보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재직하며 『한국문화사대계』를 기획하였다. 문학과 학문 양쪽에서 활약한 조지훈이 남양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조지훈의 어머니가 묻혀 있었다. 조지훈은 생전에 어머니와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하였고, 조지훈이 사망한 1968년에 어머니의 묘 아래에 무덤을 만들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남양주에서는 현재 해마다 조지훈문학제를 열고 있다. 조지훈문학제한국문인협회 남양주지부 이용호 지부장이 남양주에 조지훈의 묘역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묘역의 존재를 모르고 있어, 조지훈을 남양주 시문학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하여 조지훈문학제를 기획하였다고 밝혔다. 조지훈문학제는 2011년에 시작되어 현재는 조지훈의 묘역에서 고유제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인근 주민이 동참하는 문화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2회 조지훈문학제에는 조지훈 시비를 건립하고, 해마다 조지훈문학상을 표창하기도 하는 등 조지훈의 문학적 얼을 지키고 있다. 특히 2020년에는 ‘조지훈 탄생 100주년 행사’를 맞이하여 한국문인협회 남양주지부에서 조지훈 시선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남양주시청에서 조지훈의 묘역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남양주 관광지도에 명시하고 묘역을 정비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남양주와 현대문학]

현대에도 남양주와 관련된 내용의 소설이 출간되었다. 1988년 박영한(朴榮漢)[1947~2006]은 남양주시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연작소설 『왕룽일가』를 발표하였는데, 작중 등장하는 ‘우묵배미’는 박영한이 남양주시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공간이다. 「왕룽일가」, 「오란의 딸」, 「지옥에서 보낸 한철」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촌과 도시 문화의 충돌로 인한 농촌의 변화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으며, 시대적 상황을 핍진하게 묘사하여 1989년 미니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박영한『왕룽일가』에 이어 1989년 연작소설 『우묵배미의 사랑』을 발표하였는데, 『왕룽일가』에 비하여 서민의 좌절, 사랑, 희망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바탕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농촌 사람이 겪는 삶의 질곡을 면밀히 포착한 점이 눈에 띄며, 1990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남양주에서 활동하는 문인의 활약을 살피면 김병하, 이남석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김병하는 남양주시 천마산 중턱에 밭을 일구며 산 적이 있는데, 남양주시에 거주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쓰고 있다. 특히 2018년 그림책 『우리 마을이 좋아』를 출간하였다. 『우리 마을이 좋아』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마을 어르신의 이야기를 모아 그림책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44쪽 분량의 그림책에 농촌의 삶을 녹여 내고,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슴 따듯하여지는 작품이다. 이남석은 남양주시에 거주하고 활동하는 작가이자 심리학자이다. 이남석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여러 작품을 출간하였는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과 교훈을 주는 책이 다수 출간되었다. 『주먹을 꼭 써야 할까?』는 비행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여 청소년에게 폭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폭력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소년에게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작품이다. 이남석은 청소년에게 터부가 되는 성에 대하여서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라는 소설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10대에 가질 수 있는 성에 대한 궁금증을 차례로 풀어내며, 책을 읽는 청소년이 스스로 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편, 남양주시는 정약용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1986년부터 정약용문화제를 열고 있다. 아울러 2021년에는 남양주다산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집 『비는 비켜서는 법을 가르쳐준다』를 출간한 이충재가 1회 수상자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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