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92
한자 文益煥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2110번길 8-102[월산리 606-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금보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8년 6월 1일연표보기 - 문익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문익환 개신교와 천주교 공동 번역 성서의 구약 번역 책임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76년 - 문익환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옥고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문익환 유신 헌법 비판 성명서 발표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문익환 내란 예비 음모죄로 복역
활동 시기/일시 1986년 - 문익환 인천 5·3사건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86년 - 문익환 서울대학교 연설 사건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문익환 방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 - 문익환 제3회 4월 혁명상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94년 1월 18일연표보기 - 문익환 사망
출생지 문익환 출생지 -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룡정시 지산진
성격 사회 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한신대학교 교수|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있는 종교인이자 사회 운동가.

[활동 사항]

문익환은 1918년 6월 1일 중국 지린성 룽징시 명동촌[현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룡정시 지산진]에서 문재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숭실학교 재학 당시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동맹 퇴학하였고, 도쿄 일본신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병을 거부하며 다시 만주로 이주하였다. 한국에 귀국한 후 1968년부터 8년 동안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성서의 구약 번역 책임자를 맡았다. 1976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며 민주화 투쟁을 시작하였고, 1978년 유신 헌법 비판 성명서 발표, 1980년 YWCA 위장 결혼 사건에 참여하며, 1980년 내란 예비 음모죄로 복역하게 되었다. 출소 이후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을 맡았으며, 1986년에는 인천 5·3사건과 서울대학교 연설 사건에 참여하였다.

문익환은 민주화 운동 중에서도 통일 운동에 매진하며 재야 통일 관련 단체의 구심점이 되었다. 1989년에는 실정법을 어기고 방북해 김일성을 면담하였으며,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문익환은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으로 6번 투옥되어 10여 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92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사상과 저술]

사회적 참여 의지를 담은 시와 에세이를 비롯하여 종교서, 건강서 등을 집필하였다. 시집으로는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민중시』, 『그대 말씀으로』, 『죽음을 살자』, 『통일을 비는 마음』, 『두 하늘 한 하늘』, 『내 마음 우러나는 소리로 살고 싶었네』, 『걸어서라도 갈 테야』, 『마침내 오고야말 우리들의 세상』, 『꿈을 비는 마음』, 『옥중일기』가 출판되었다. 그 외에 저작으로서 『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혁명의 해일』, 『히브리민중사』, 『가슴으로 만난 평양』,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 『예수와 묵자』, 『더욱 젊게』 등이 있다. 사후에도 글모음집, 대담집 등이 출간되었는데, 옥중 서신을 모은 『목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 대담집 『통일시대를 열어나가는 아홉가지 이야기』를 비롯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수필·시집·통일·옥중 서신·신학·건강·설교 등을 모은 전집 『늦봄 문익환 전집』 1~12권이 출간되었다.

[묘소]

문익환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제3회 4월 혁명상을 수상하였다. 매년 기일인 1월 18일 즈음 문익환이 안치되어 있는 모란공원에서 추모제가 진행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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