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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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載日 |
영어공식명칭 | Lee Jae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대열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 1월 11일 - 이재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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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이재일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3·1운동 관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2일 - 이재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65년 4월 12일 - 이재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이재일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재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활동지 |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재일(李載日)[1875~1965]은 1875년 1월 11일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에서 태어났다. 부평리 3·1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민족 대표들의 3·1 독립 선언 소식을 접한 뒤 봉선사 승려 일부는 시위 계획을 구체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1919년 3월 29일 봉선사의 승려였던 이순재(李淳載)·김성암(金星岩)·강완주(姜完珠), 서울에서 약종상을 하고 있던 김석로(金錫魯) 등은 문건을 작성하여 부평리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배포된 문건의 명의는 ‘조선 독립단 임시 사무소’였으며,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을 독립국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듯하므로, 이러한 기회에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재일은 격문을 받아 본 뒤 부평리 광릉천 일대의 시위를 처음으로 결의하고 구체화하였다. 이에 따라 최영갑(崔永甲)·최대봉(崔大奉)·양삼돌(梁三乭)·유희상(柳熙庠)·박석몽(朴石夢)·이흥록(李興錄) 등을 규합하여 1919년 3월 31일 시위 장소로 약속한 광릉천 변에 나가서 주민들과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시위는 일본 헌병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이재일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재일은 공소를 하였지만 1919년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은 기각하였다. 이후에도 상고를 하였지만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은 기각하여 형이 확정됨에 따라 복역하였다.
이재일은 1965년 4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재일에게 1986년 대통령표창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