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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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孟 |
영어공식명칭 | Jo Maeng |
이칭/별칭 | 조바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5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홍민호 |
묘소|단소 | 조맹 묘소와 신도비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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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풍양(豐壤) |
대표 관직 | 평장사|문하시중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고려 전기의 문신.
[가계]
조맹(趙孟)[?~?]은 풍양 조씨(豐壤 趙氏)의 시조이다. 조맹의 초명(初名)은 바위[巖]이다.
[활동 사항]
조맹은 신라 말에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고려 개국 이후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제수되었고, 평장사(平章事)와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역임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달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제수되었다. 관직에 나아가고 공신(功臣)이 되면서 태조(太朝) 왕건(王建)으로부터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묘소]
조맹의 묘는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5에 있다. 광해군(光海君)이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묘를 성릉(成陵)으로 승격하여 단장하면서 근처에 있던 조맹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의논이 제기되었으나, 조맹이 공빈 김씨에게 외친 원조(外親遠祖)가 된다는 이유로 묘는 옮겨지지 않았고, 봉분(封墳)을 없애는 선에서 그쳤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조맹의 후손 조수이(趙守彝) 등의 상소로 다시 봉분을 쌓았다. 당시의 시설은 알 수 없지만, 추후 호석(虎石)을 두르고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양각하였으며, 70㎝ 가량의 봉분을 얹었다. 봉분 앞에는 묘비, 상석, 장대석, 향로석 등의 석물이 조성되어 있다.
봉분 중앙에 비교적 최신의 묘표(墓標)가 세워져 있고 봉분의 좌우측으로 비가 하나씩 있다. 좌측의 비는 1651년(효종 2)에 건립된 것이고 우측의 비는 1904년에 만들어졌다. 묘역 아래에 조맹의 신도비(神道碑)도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