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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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 申氏 |
영어공식명칭 | Pyeongsan S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기중 |
본관 | 평산 - 황해도 평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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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신임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주을촌 |
묘소|세장지 | 신만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화현 |
성씨 시조 | 신숭겸(申崇謙) |
[정의]
장절공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세거성씨.
[개설]
평산 신씨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한 공신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평산 신씨 15세손인 신호(申浩)를 파시조로 하는 사간공파(思簡公派)의 인물이 세거하며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원]
신숭겸은 전라남도 곡성 사람으로 초명(初名)은 능산(能山)이다. 배현경(裴玄慶)·홍유(洪儒)·복지겸(卜智謙) 등과 함께 궁예(弓裔)를 폐하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가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개국 공신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927년 고려는 대구 공산(公山)[현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전투를 벌였는데, 고려군이 포위 당하여 전세가 위급해지자 태조와 용모가 비슷한 신숭겸은 태조를 피신시키고 대신 국왕의 옷을 입어 결국 전사하였다. 태조는 신숭겸의 유해를 춘천에 예장하고, 시호를 장절(壯節)로 하였다.
평산 신씨의 파계는 시조의 15세손에서 19개파로 분파되었는데, 그중 신개(申槩) 중심의 문희공파(文僖公派)와 신효(申曉) 중심의 정언공파(正言公派), 신호(申浩) 중심의 사간공파(思簡公派)의 세가 가장 강하다. 평산 신씨는 특히 조선 후기에 세력을 떨쳐 재상 8명, 대제학 2명, 공신 11명, 판서 20명, 문과 급제자 302명을 배출하였는데, 3개 지파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입향 경위]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 평산 신씨의 정확한 입향조와 입향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평산 신씨 사간공파 인물 중 경기도 남양주시에 근거하여 활동한 인물을 통해 세거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조선 숙종~영조 대의 문신이었던 신임(申銋)[1639~1725]은 1686년(숙종 12) 48세의 나이로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으며 성균관대사성과 사헌부대사헌, 호조참판, 의정부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며,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주을촌에 있다.
한편 숙종~영조 대의 문신인 신만(申晩)[1703~1765] 또한 경기도 남양주 지역 평산 신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726년(영조 2) 알성 문과 별과로 급제하여 헌납, 지평, 성균관대사성, 부제학, 이조참판 등을 거쳐 영조 대에 삼정승을 모두 역임하였다. 시호는 효정(孝正)이며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다.
이처럼 평산 신씨 사간공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았다는 점을 통해 평산 신씨 사간공파가 일정 정도 세거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황]
1978년 편찬한 『양주군지』에 따르면 평산 신씨는 1970년대 모두 791개 가구, 총 3,16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평산 신씨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와부읍·진건읍과 동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 2015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평산 신씨는 총 8,254명이다.
[관련 유적]
경기도 남양주시의 평산 신씨와 관련된 유적으로 충경공 신임(申銋)의 묘와 효정공 신만(申晩)의 묘가 있다. 신임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주을촌에, 신만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