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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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村土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역촌마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윤성호 |
건립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역촌토성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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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 역촌토성 서일전문대학에서 지표 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역촌토성 토지주택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3년 - 역촌토성 육군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
소재지 | 역촌토성 -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역촌마을 |
성격 | 토성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에 있는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
[개설]
역촌토성(驛村土城)은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역촌마을에 있다. 역촌토성이 있는 구릉은 삼국 시대 이후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충돌이 벌어진 지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시된 한강의 통제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주요 나루를 통제하는 시설이 필수적이었다. 역촌토성은 한강이 직각으로 굽이치는 지점에서 반대편 경기도 하남 미사동 일대를 연결하는 나루를 통제하기 위한 관방 시설로 추정된다.
[위치]
역촌토성은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역촌마을에서 한강에 접하는 해발 52.6m 구릉에 있다. 한강이 덕소 부근부터 거의 직각으로 굽이치는 부분의 한강변 언덕에 해당한다. 구릉은 동서로 약 500m, 남북으로 110m 규모이다. 입지의 특징은 나루의 통제와 감시를 위한 것으로 추정되며 수석리토성이 인근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역촌토성은 전근대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일제 강점기의 토지 조사와 고적 조사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1994년 서일전문대학의 경기 동부 지역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역촌토성의 존재가 처음 보고되었다. 1999년 토지주택박물관, 2003년 육군박물관의 남양주시 대상 광역 및 군사 유적 지표 조사 과정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현황]
역촌토성이 처음 보고된 1994년에는 토성의 잔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인접한 목장의 진입로가 성벽을 관통하였는데 강에 인접한 북벽이 가장 높게 토성의 형태로 남아 있었으며 장대지도 북벽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북벽 사면부에는 도굴당한 수백 기의 고분이 존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1999년 이후 조사에서는 토성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정상부 동쪽은 객토와 평탄화 작업으로 지형이 변하였으며, 과거 토성이 존재한 곳으로 보고된 지점에서는 성돌이나 켜쌓기 등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으며, 토성 서쪽의 능선도 농지 개간으로 인하여 유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정밀 발굴 조사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개발로 인한 토성의 훼손인지 최초 조사에 착오가 있었던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토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구릉 사면부와 정상부에서 고려 시대 이후 생선뼈무늬 와편, 조선 시대 청해파문 와편과 회색도기류, 백자편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었다. 수습 유물을 통하여 토성과 관련된 고려 시대 이후 건물지가 정상부에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역촌토성은 한강을 감시하기 위한 시야가 양호한 지점이므로 한강 수계와 나루를 통제하는 목적의 관방 시설로 보인다. 하지만 지표 조사의 한계로 토성이 존재하였는지 혹은 존재한 토성이 훼손된 것인지의 여부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수석리토성의 발굴 조사 결과를 참고하면 역촌토성도 고려 시대에 축조된 토성일 가능성이 있으나 초축 시기가 삼국 시대까지 올라가는지의 여부는 향후 발굴 조사를 통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