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801 |
---|---|
한자 | 姜大成 |
영어음역 | Kang Daeseong |
분야 | 종교/신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정만 |
[정의]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신흥 종교 창시자.
[가계]
본관은 진주. 수은공(睡隱公) 강항(姜沆)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유도갱정’이라는 유도 계통의 신흥 종교를 창시한 강대성은 오낙중에게 받은 『음부경(陰符經)』을 읽으며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그는 아들, 부인과 함께 회문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 그러나 얼마 후 부인이 죽자 강대성은 남원, 구례 등지를 배회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남원과 순창 일대에서 그를 신인(神人)으로 따르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자, 그는 1943년 순창 회문산 세자봉 및 도영동에 도단(道壇)을 개설하고 ‘유불선동서학합일유도경정교화일심교’라는 긴 이름의 종교를 창도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앞으로 세상을 이끌 구세주로 보고 이 땅에 새 왕국을 세울 강천자(姜天子)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자 이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뒤 8·15해방을 맞이하여 교단은 일약 대 교단으로 발전했다. 1951년 교단 본부를 김제군 광활면으로 옮겼을 때는 전국에 수만의 신도가 있었다. 이때 강대성은 UN총회에 메시지 형식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일심교만이 말세의 창생을 제도할 수 있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니 UN은 각성하라”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이 비화되어 강대성은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전주도립병원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죽었다.
강대성이 죽자 일심교는 교통 전승과 교권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종파로 나뉘었다. 현재 일심교는 남원시 도통동에 본부를 두고 있는 남원파와 지리산 청학동, 회문산, 변산 일대와 전라북도 순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몇 개의 교파가 있다.
남원파에서는 1960년경 남북 통일을 하기 위해 많은 신도들이 판문점으로 가서 북한측과 담판을 하겠다고 상경하다가 경찰의 제지로 서울역 광장에서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데모를 벌이기도 했다. 1996년 문화공보부에 공식 등록했으며, 현재는 포교보다 내수도(內修道)에 치중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부응경(符應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