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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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復興 |
영어음역 | Kim Bokhe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정만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의병.
[개설]
김복흥은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군사와 군량을 모아 권율 장군과 명나라 지원군을 도왔다.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언(景言), 호는 계곡(谿谷). 좌의정 양경공(襄景公) 김승주(金承霔)의 후손이며, 사정(司正) 김익창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김복흥은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모두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살았다. 일찍이 만헌(晩軒) 정염(丁焰)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학문과 행의가 뛰어나 주위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미능재(未能齋) 최상중(崔尙重),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 활계 이대유 등과 교류하였다.
1570년(선조 25)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군사와 군량을 모았는데, 조정에서는 이를 알고 김복흥에게 별제(別提)를 제수했다.
명나라 장수 여응종(呂應鍾)이 선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지공관(支供官)에 임명된 김복흥는 선산으로 가서 명나라의 보급을 맡아 일하였고, 또한 명의 장수와 더불어 전략을 의논하기도 했다. 그 뒤 벼슬이 금부도사(禁府都事)에 이르렀다.
[저술 및 작품]
유고 『계곡집(谿谷集)』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상훈과 추모]
김복흥은 현주사(玄洲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