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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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峰鄕校 |
영어음역 | Unbong Hyanggyo |
영어의미역 | Unbong County School |
이칭/별칭 | 이궁,교궁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산덕리 60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찬용 |
성격 | 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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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410년 |
정면칸수 | 3칸[대성전] |
측면칸수 | 2칸 반[대성전]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산덕리 600 |
소유자 | 운봉향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문화재 지정일 | 1984년 4월 1일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산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운봉현의 남원 유생들을 위해 설립된 국립 중등 교육 기관.
[개설]
운봉향교는 전국적으로 모든 행정 구역에 설립된 교육 기관 중 하나였다. 남원도호부 운봉현에서 유교 성현, 공자를 비롯한 오성(五聖) 성현과 송조(宋朝) 사현(四賢), 우리나라 18현인(賢人)의 제사를 지내며 운봉현 백성들의 중등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변천]
운봉향교는 1410년(태종 10)에 처음 설립되었다. 이는 고려왕조에 이은 조선시대의 숭유 정책에 의해 유교를 국교로 숭상하기 위해 향교의 전국화, 대중화가 요구되면서 조선 건국 초기부터 전국에 국법으로 향교 설치 강제령을 내린 것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운봉향교의 위치는 이후 네 번이나 바뀌게 된다. 특히 운봉현의 생활상을 전하는 『운성지(雲城誌)』 구지(舊誌)의 기록에 따르면 가산리에 처음 설립된 이후 운봉향교는 다시 1575년(선조 8)에 성산으로 이건하였다가 임진왜란 후에 현재의 위치에서 다시 재건되었다.
당시 남원도호부에서 70명, 남원 관할의 행정 군에서 50명, 각 현에서 30명 정도를 선발하여 교육함에 따라 운봉현에서도 약 30명의 향촌 사회 자제들이 수학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에 완전 전소되었고, 1640년(인조 18)에 현재의 위치인 운봉읍 산덕리에 재건되었다.
당시 재건된 시설은 대성전(大成殿)과 신문, 명륜당(明倫堂), 동서재, 전사청, 행랑, 좌우익랑 등 전체 건물 9동 39칸의 규모였다. 이후 1724년에는 대성전이 중건되었고 1752년에 창건된 양사재(養士齋)는 이후 중건되기를 몇 차례 반복하였다.
1864년에는 4칸 규모의 사마재(司馬齋)를 창건하였다. 1909년에는 운봉향교 부설 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이후 남원군 공립보통학교로 명칭을 바꾸어 남원군청이 관리하는 등 지역 사회 교육에 매진하였다.
이후 1979년 3월에 원인 모를 큰 화재로 명륜당이 전소되어 향교 설립 이래 중요한 고문서와 서적, 제기, 제복 등의 기물들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다시 2년 뒤 명륜당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운봉향교의 현존 시설로는 3칸의 외삼문과 솟을대문으로 있는 3칸의 내삼문을 비롯하여 유교 성현을 모신 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0호)과 강당인 명륜당이 주요 건물 형태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명륜당은 양박공 머리에 방풍판을 달았고 겹처마에 두리기둥을 사용하여 평면 좌우 양측에는 각각 한 칸의 방을 두었으며 중앙 3칸은 대청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명륜당 뒤편에는 좌우의 모둠지붕 형태의 동재와 서재를 비롯하여 사마재, 고직사 1동이 부속 건물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현황]
운봉향교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해 왔으나, 2007년도부터 양력 5월과 9월로 바뀌었다. 또한 전국 모든 향교의 석전대제 시기의 변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현재 전교와 장의를 비롯하여 1945년 10월에 조직된 운봉향교 유도회가 지역 주민을 위한 전통 문화 확산을 위해 일요 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운봉향교는 『논어』와 『맹자』 등 사서삼경을 운봉 읍민에게 강론하는 일요 학당과 1945년 운봉 지역 유림들에 의해 조직된 운봉향교 유도회(儒道會)를 통해 공자의 유교 정신에 기본을 둔 유교 선양 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한 지역 사회 봉사 활동을 비롯하여 생활 예절 및 한문, 전통 혼례, 성인 관례 등의 전통 문화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재정의 원활함을 위해 자산 관리에 힘쓰고 있다. 현재 자산으로는 운봉향교 답으로서 땅 5.5마지기와 임야 16정을 보유하고 있고, 운봉향교 유도회와 위성계를 통해 향교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운봉향교는 이와 같이 조상에 대한 예절 지키기와 선비 문화를 계승하고 있으며, 문묘의 석전대제와 지방 공교육을 적극적으로 수용, 담당한 기관이었다. 또한 근대 까지 우리의 전통 문화의 산실이었으며, 선비 문화를 학습하고 과거 공부를 하던 우리 민족의 전통적 교육 공간 역할을 하였다. 또 지역과 국가의 인재를 길러내는 인재 양성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던 전통 문화의 물결이 점점 젊은 세대와의 단절로 인해 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향교의 부활을 기대하는 이유는 그래서 너무도 간절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