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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010
한자 崔汝雲
영어음역 Choe Yeoun
이칭/별칭 여앙,양지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본관 화순
대표관직 선무원종공신|사헌부감찰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여앙(汝仰), 호는 양지당(養祉堂). 문충공(文忠公) 최선문(崔善門)의 후손이며, 지평(持平) 매헌(梅軒) 최달승(崔達昇)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최여운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또한 힘이 세었다. 부모의 상을 당할 때마다 여막(廬幕)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그의 족형(族兄)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과 사촌 아우 최여근(崔汝謹) 등과 함께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는데, 율곡 이이(李珥)가 볼 때마다 그를 치켜세워 주었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서 적병이 남원성을 공략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족형, 사촌 아우 등과 분연히 일어났다. 수성령(宿星嶺)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병 수십 명을 베었다.

이후 바로 화개동으로 내려가 섬진강가에 있는 적병을 참살하였다. 밤에 광양에 이르러 적병이 가죽 침낭 속에서 깊이 잠든 틈을 타 그들 형제는 적진에 잠입하여 침낭을 바다에 던져 많은 적군을 죽였다. 이때 다른 적들이 놀라 잠에서 깨어나자, 또 맨주먹으로 적의 칼을 빼앗아 좌우의 많은 적을 참살하였다. 그러나 그도 적군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순조 때 충신의 정려(旌閭)가 내려졌고, 고종 때에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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