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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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瑛 |
영어음역 | An Yeong |
이칭/별칭 | 원서,청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윤진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원서(元瑞),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기묘명현 사재당(思齋堂) 안처순(安處順)이며 아버지는 사과(司果) 안선국(安善國)이다. 남원의 금릉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안영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남원의 본가에 있었는데 당시 모친은 서울의 집에 있었다. 난을 만나서 서로 찾지를 못하고 있는 터에 서울의 사대부 부녀자들이 강화로 피난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의 행방을 알고자 밤낮으로 찾아 다녔다.
이때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이 강화로 들어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하여 양대박(梁大樸)과 함께 고경명의 휘하에 들어갔다.
고경명이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적과 싸워 패하였다. 안영이 ‘이번에는 일단 물러났다가 뒷날 다시 일어날 것을 도모하소서’라고 권하였으나, 도리어 고경명은 ‘나는 이미 죽음을 결심하였으니 그대는 빨리 여기를 벗어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안영은 듣지 않고 고경명을 부축하여 말에 오르게 하였으나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안영은 자신의 말에 고경명을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따라갔다. 유팽로(柳彭老)와 더불어 고경명을 엄호하며 적과 싸웠으나 끝내 고경명·유팽로와 함께 순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 「청계실기」가 있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는 좌승지에 추증하고 정려(旌閭)를 내렸고, 광주의 포충사(褒忠祠)와 금산의 종용사(從容祠), 남원의 정충사(旌忠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