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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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璧 |
영어음역 | Kim Byeok |
이칭/별칭 | 화가,만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화가(和可), 호는 만은(晩隱). 문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며, 김순례(金順禮)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김벽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4년(중종 29)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천거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비들이 의병장으로 추대하였으나, 김벽은 자신의 나이가 83세의 고령이라는 이유로 이를 사양했다. 대신 아들 김승박을 시켜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창의소(倡義所)에 군량과 군비를 보냈다.
또한 왜란 중에 김벽은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에게 편지를 보내어 ‘읍터는 지세가 가파르거나 험하여 적을 막을 만한 곳이 없어 지키기 어려우니, 오직 산성을 고수하라’고 하였으나 양원이 이를 듣지 않아 마침내 패전했다고 한다. 뒤에 관찰사의 천거로 판결사(判決事)에 임명되었다.
[상훈과 추모]
후에 관찰사가 김벽의 공을 조정에 알려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