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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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監務 |
영어음역 | Gammugwan |
영어의미역 | Superintendent |
이칭/별칭 | 감무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직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유호석 |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군(郡)·현(縣)에 파견되었던 지방 관리.
[제정경위 및 목적]
감무는 고려 중엽인 1106년(예종 원년)부터 정부가 서해도(西海道)를 비롯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방 군·현의 백성들을 위로하여 유민(流民)의 발생을 방지함으로써 조세와 역(役)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특히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과 속현 지역에 감무관을 파견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강화하여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물론 감무관이 반드시 이러한 연유에서만 설치된 것은 아니었다.
가령 1172년(명종 2)에 50여 개의 속현에 한꺼번에 감무가 설치된 것은 당시 무인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준의(李俊儀)의 주청(奏請)에 따른 것이었다. 이것은 무신 권력의 세력기반 구축에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고려 말에 이르면 속군·속현에 감무의 파견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 감무가 파견되지 않은 이웃 고을에 대한 감무의 겸임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른 속군·속현의 병합 또는 폐합이 있었다.
고려 말에 있었던 이러한 군현의 통·폐합 조치는 조선왕조의 개국을 위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확립을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이러한 조치들이 궁극적으로는 중앙집권력의 강화와 지방 토착세력의 약화로 이어졌던 것이다.
[관련기록]
『고려사』권 57, 지리지 전라도 남원부조에는 남원부에 예속된 2군 7현의 변천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 중 감무가 파견된 임실군·순창군·구례현의 연혁도 실려 있다.
이밖에 동서(同書) 세가와 열전에 관련 기록이 나누어 실려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라도 남원부편에서도 감무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내용]
남원부의 속군·속현으로 감무가 파견된 임실군·순창군·구례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임실군의 경우 본래 백제의 임실군으로, 신라도 이를 계승하여 그대로 두었으며, 고려에 이르러 내속(來屬)하였고,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었다.
순창군의 경우 본래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으로, 신라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 순화군(淳化郡)으로 삼았다. 고려에 와서 순창으로 이름을 고쳐 현으로 삼아 내속하였고, 1175년(명종 5)에 감무를 두었다. 충숙왕 원년(1314)에 승려 국통(國統) 정오(丁午)의 고향이므로 지군사(知郡事)로 올렸다.
구례현의 경우 본래 백제의 구차례현(仇次禮縣)으로, 신라 경덕왕이 구례현으로 고쳐 곡성군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 내속하여 1143년(인종 21)에 감무를 두었다. 별호(別號)를 봉성(鳳城)이라 하였다.
[변천]
고려 예종 초부터 지방에 파견되기 시작한 감무관은 고려 전체를 통틀어 200여 지역에 설치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태조 때 25개 군현에 감무가 설치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대대적인 군현제의 개편에 따라 감무가 현감(縣監)으로 개칭되면서 완전히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