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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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川渠洞 |
영어음역 | Cheongeo-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정섭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천거동은 본래 개천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냇거말이라 했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천거(川渠)가 되었다. 일설에는 옛날 남원성(南原城) 내의 하수구가 요천 쪽으로 많았으며, 요천을 이용하여 조산 쪽 들로 향하는 농수로 등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내[川]의 도랑[渠]을 뜻해 천거(川渠)라 했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남원의 장흥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천거리, 남북교리(南北敎里), 금리(錦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천거리라 하고 남원읍에 편입되었다.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리가 동으로 바뀌어 쌍교동 관할이 되었다가 1998년 9월 22일 행정동 통폐합으로 금동 관할이 되었다.
옛날에 지금의 남원교육문화회관(구 남원의료원) 자리에는 성안시장이 있었고, 천거동에는 성밖시장(광한루원 주차장에서 정문 일대)이 있어 남원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제강점기 천거동 시장은 강경시장(江景市場), 대구(大邱)의 약령시장(藥令市場)과 아울러 전국 3대 시장 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전성을 이루었으며, 우시장도 수원(水原) 우시장 다음가는 큰 장이었다.
천거동 시장의 규모가 컸던 이유는 인근의 장수, 구례, 곡성, 순창, 함양, 임실 등 위성적 소도시의 상인들이 모두 남원장을 중개로 삼아 도매상과 소매상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화재로 천거동 시장이 금동으로 옮겨가 지금의 공설시장이 되었다. 본래 시장이 있었던 곳은 밤장 또는 율림(栗林)이라 하여 밤나무 숲이었다고 한다. 이 밤나무 숲을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 모두 베어내고 군사를 조련하는 훈련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며, 지금의 승사교 서쪽은 복숭아밭이 있어 도화동(桃花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자연환경]
천거동 앞으로 요천이 흐르고, 제방에 벚나무 터널이 형성되어 봄에는 벚꽃터널이 아름답다.
[현황]
2007년 기준 면적은 17.12㏊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34세대에 289명(남자 133명, 여자 1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쌍교동, 남쪽으로는 노암동, 북쪽으로는 금동과 접하고 있다. 광한루원(廣寒樓苑)이 위치하여 춘향제(春香祭) 등 관광과 상업의 중심지이며 남원 지역의 대표적 음식인 추어탕집이 밀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