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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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槐陽里 |
영어음역 | Goeya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소강춘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괴양리는 면소재지로부터 남쪽으로 3.5㎞ 떨어져 있고 보절면의 계룡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산 아래에 위치하며 개신마을, 양촌마을, 음촌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유래]
개양마을과 신촌마을을 합하여 개신마을이라 하며, 마을의 양지 쪽에 위치한다 하여 양촌마을, 마을의 음지쪽에 위치한다 하여 음촌마을이라 불린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남원군(南原郡) 고절면(高節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괴정(三槐亭), 신촌(新村), 개양리(開陽里), 회산리(回山里), 양촌리(陽村里), 음촌리(蔭村里)를 병합한 후 삼괴정과 양촌의 이름을 따서 괴양리라 하고 괴양리에 편입하였다.
개신마을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립하던 삼국시대에 피난지를 찾아 씨족단위로 정착하던 차에 부안김씨와 광주안씨가 산동면과 보절면의 경계인 구라치에서 만나 부안김씨는 산동면 목동마을에 자리를 잡고, 광주안씨는 보절면 괴양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조선 중기에 진주형씨가 들어왔으며, 다시 100년 전에 파평윤씨가 터를 잡아 신촌이라 명명하고 개신마을을 형성하였다.
개신마을은 처음에는 빈터라 불렸는데, 그 이유는 약 500여 년 전 백중날 아침 뜻밖의 폭우로 마을이 완전히 침수되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 다시 주택이 들어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 개양이라 이름을 고치고, 1976년 1월에 개양과 신촌을 합쳐 개신이라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양촌마을은 1580년경 광주안씨, 은진송씨가 계룡산맥을 따라 지금의 양촌마을에 정착하였다.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냇가에 큰 괴목이 세 그루 있어 삼괴정이라 불리다가 양지, 개양 등의 마을이 합쳐져 괴양리라 불렸으며 1970년대 행정구역 분리에 따라 양촌이라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음촌마을은 정착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양촌마을과 같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 경기도 광주에서 안씨가 피난을 와 정착하였으며 그 후 김씨, 양씨, 송씨가 차례로 정착하여 현재의 음촌마을을 이루었다.
[자연환경]
괴양리는 계룡산 줄기를 따라 형성된 구릉에 위치한 중산간 지역의 마을로, 안개가 심하다. 마을 앞으로는 지방도와 괴양천을 중심으로 농토가 형성되어 있으며 괴양촌 주변에 큰 괴목 세 그루가 있다. 산림이 65%를 차지한다.
[현황]
2006년 12월 기준 3개 마을을 합한 괴양리 전체 면적은 3,091㎢로 전 179㎢, 답 726㎢, 과수원 3㎢, 임야는 1756㎢이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85세대, 174명(남자 92명, 여자 82명)이 거주하고 있다.
괴양리 일원에서는 삼동굿놀이보존위원회 주최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삼동굿놀이를 한다. 괴양리 삼동굿놀이는 동으로 약산(지네), 서로 계룡산(닭)이 남북으로 뻗쳐 있어 풍수지리학적으로 지네가 닭을 해친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삼성(三姓)의 동자(童子)로 하여금 지네를 밟아 준다는 민속놀이로, 수확을 앞둔 농민들이 풍년을 기원하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마을의 안녕 그리고 주민의 단합을 목적으로 이곳에서만 전승되는 특이한 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