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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죽음을 걸고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절행담. 『고려사(高麗史)』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남원조(南原條)」에 수록되어 있다. 지리산녀는 구례현 여자로 지리산 밑에 살고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부도(婦道)를 잘 닦아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듣게 된 백제왕이 그녀를 취하고자 하였지만,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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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시의 군(郡)·현(縣)에 파견되었던 지방 관리. 감무는 고려 중엽인 1106년(예종 원년)부터 정부가 서해도(西海道)를 비롯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방 군·현의 백성들을 위로하여 유민(流民)의 발생을 방지함으로써 조세와 역(役)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특히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과 속현 지역에 감무관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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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고려 태조부터 왕조 말까지의 역사. 고려시대 남원은 남원부(南原府)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남원부는 고려 건국 초에는 강남도에 소속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는 강남도와 해양도가 합하여 전라도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남원부 역시 여기에 소속되었다. 남원부는 또 용성(龍城)이라고도 하였다. 남원 지역은 통일신라 이래 5소경(小京)의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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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설치된 역도(驛道). 건국 이래 강력한 지방 토착 세력들을 견제하며 중앙 집권적인 권력 구조를 구축하고자했던 고려는 성종 때 12목을 설치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에 나섰으며, 조세(租稅)와 공부(貢賦)를 징수하여 경제적인 토대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적인 교통수단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역참제도와 조운제도를 확립하게 되었다. 남원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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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1세기 중반에서 서기 7세기 중반까지의 역사. 일반적으로 삼국시대는 삼국이 형성되면서부터 백제(660), 고구려(668)가 멸망할 때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들 나라 외에도 가야와 부여 등의 나라와 함께 소규모의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중반까지 남원 지역에는 섬진강 유역의 마한과 남강 유역의 변한이 있었다. 섬진강 유역은 마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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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의 전달, 오고 가는 관리들의 숙박에 활용되었다. 고려 성종대에 와서 더욱 구체화된 역참제는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구성되었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이 시기에 전라도에는 전공주도(全公州道) 21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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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의 별호(別號). ‘용성’이 남원의 별호라고 처음 지칭한 것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서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남원을 가리키는 말로 용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고려사』에 나오는 용성의 사용례를 찾아보면 대부분 수주(水州)[수원]의 속현이나 안변도호부에 속한 등주(登州)의 속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을 가리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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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여객(旅客) 및 교통 제도. 원(院)은 일반 여객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종의 여관이었다. 그러나 국왕이 지방을 순시하거나 피난길에 이용되기도 했으며, 각 도 관찰사가 고을을 순행할 때에 점심을 먹거나 마필을 교체하는 곳으로도 쓰였다. 또한 원은 민심을 파악하거나 고을 수령들에 관한 내사(內査) 자료를 얻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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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리산녀 설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지리산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남원시 인근 지역에서 전해 오는 「지리산녀 설화」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지리산녀와 관련하여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구례 지역에서 내려오는 「지리산녀가」이다. 이외에도 지리산 백무동 한신계곡 가내소폭포에도 지리산녀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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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수운(水運) 제도. 진(津)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국의 주요 강변의 요충지에 설치했던 나루터이다. 관진(關津), 진관(津關) 또는 도(渡)라고 불렸다. 원래는 드나드는 사람들을 검색하기 위해 설치되었지만, 실제로는 교통 및 통신 기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남원부와 그 관할 군현들은 내륙 깊숙이 위치에 있지만 섬진강을 통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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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남원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대흥(大興). 평장사(平章事) 한유충(韓惟忠)의 아들이다. 한문준은 인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재주 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외직으로 나가 장주(長州)·장흥(長興)·남원(南原) 세 고을의 부사(副使)와 남경부유수(南京副留守)를 역임하면서 자비로운 정치를 베풀었다. 그의 제자 오세재(吳世材)가 시를 지어 “남녘에서는 세 군(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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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남원 지역에서 거둔 조세미(租稅米)를 보관하던 창고. 해룡창은 사비포(沙飛浦) 또는 조양포(潮陽浦)로 불렸다. 조창(漕倉)이 설치되기 전부터 세곡(稅穀)을 수납하던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순천도호부 남쪽 10리 지점 해룡산 부근으로 나와 있다. 지금의 순천시 해룡면 해창리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조창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