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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795
한자 宗敎
영어음역 jonggyo
영어의미역 religion
분야 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집필자 이종록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남원 지역의 종교는 역사적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오래 전부터 민간인들 사이에 신앙되어 오는 민간신앙이다. 둘째는 삼국시대에 중국이나 인도 등으로부터 전래된 유교·도교·불교와 조선 후기에 전래된 천주교 등 외래 종교이다. 셋째는 조선 말기 우후죽순처럼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신흥 종교이다.

남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 문화를 잘 지키고 발전시켜 온 고장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특징은 일반 문화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남원 지역에서 불교와 유교는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해 왔고, 그러한 흔적들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간신앙]

남원 지역의 민간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전쟁터였고 소백산맥 끝자락인 1000m 넘는 지리산이 위치하기 때문에 역사 이래로부터 남원 고유의 민간신앙이 독자적인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남원의 민간신앙으로는 마을신앙, 가택신앙을 비롯하여 탑제 그리고 장승·솟대·입석·거석과 같은 신앙물들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세시풍속, 통과의례 그리고 전설, 민속놀이, 민요 등에서도 민간신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남원의 민간신앙을 대표하는 것은 마을신앙으로서의 당산제, 탑제, 장승이다. 남원의 당산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마을의 평화와 안녕에 주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남원 지방의 당산제는 87개 마을에서 실행되었는데, 이를 통해 남원의 공동체 신앙인 당산제가 남원 지방의 구성체를 통합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남원의 탑제는 당산제와 병행하여 실시되는데, ‘조산(造山)’, ‘돌무데기’, ‘조탑(造塔)’ 등으로 불린다. 탑은 불교의 전용물이지만 그 형태를 민간에서 비보 형태로 활용한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조탑이 불교의 비보 신앙과 풍수지리설의 비보와 함께 어우러져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장승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 사찰 입구에 세워졌다. 남원 지역 장승의 특징은 모두가 불법 수호 내지는 마을 수호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장승이 남원의 평야 지대에는 하나도 없는데 동부 산간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23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원이 수많은 전투가 치루어졌던 접경 지역인 만큼 마을의 생존권이 달린 존망의 기로에서 마을 공동체의 생명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불교]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384년(침류왕 원년)이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성왕 때에 이르러 남원 지역에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시대 남원 지역에 교종 계통으로는 법상종과 화엄종, 선종 계통으로는 실상산 선문을 비롯하여 가지산, 사굴산, 동리산, 희양산 선문이 유포되었다.

의상의 화엄종은 신라 말기 가야산 해인사파와 지리산 화엄사파로 나누어지는데 남원 지역에는 남악파, 즉 화엄사의 화엄종이 유포되었다. 당에 유학하여 서당지장선사로부터 육조 혜능의 남종선을 전수한 홍척국사는 828년(흥덕왕 3) 지리산(현 남원시 산내면)에 구산선문의 시초가 되는 실상사를 창건하였다. 이후 남원 지역은 한국 선종의 중심지가 된다.

혜철국사는 전라남도 곡성의 동리산 태안사에서 선문을 개창하였으며 혜철 문하에서는 도선국사를 비롯하여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다. 도선국사는 남원 지역에서 만복사, 선원사, 용담사, 대복사, 미륵암 등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도헌국사는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면에서 태어난 진감국사 문하에서 선(禪)을 배운 후, 경상북도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에서 선문을 개창하였다.

도헌국사의 고제(高弟) 중 성견은 남원 지역 출신으로, 희양산 선문 또한 남원에 유포되었다. 보조 휴증의 가지산 선문과 범일국사의 사굴산 선문도 남원 지역에 포교되었다. 이 시기에 창건된 사찰 중 산내면실상사백장암, 산곡동선국사, 도통동선원사, 왕정동대복사가 현존하고 있다.

고려는 통일신라 불교의 호국적 성격과 회통(會通)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사굴산 선문 출신의 보조 지눌은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에서 조계선종을 표방하였다. 태고 보우는 중국 원나라 석옥청홍선사로부터 임제 선법을 전수받아 광주(廣州) 봉은사를 본산으로 구산선문을 조계일문으로 통합하였다. 태고 보우의 법손(法孫)인 환암 혼수는 전주 위봉사에서 선법(禪法)을 선양하였다. 환암의 법계를 잇는 구곡 각운은 남원 출신으로서 만행산 승련사에서 교화를 펼쳤다.

이 시기에 전라남도 조계산 수선사(송광사) 제10세 조사가 되는 혜감 만항만행산에서 보현사를 창건하였고, 남원에서 출생한 졸암 연온은 만행산 금강사를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승려들은 기복식(祈福式) 불공이나 재(齋)를 지내야 했으며 농경, 건축 등 생업에 매달려야 했다. 조선시대 남원 출생이거나 남원에서 활동한 고승으로는 벽암 각성, 최은 응준, 백암 성총, 용담 조관 등이 있었다.

1899년(고종 광무3) 국내 사찰 통일안에 의거 전국 13도에 수사(首寺)를 두고 각 도의 사찰을 관리하게 하였다. 이때 전라북도 지역 수사는 김제의 금산사로 남원 지역 사찰은 모두 금산사의 관할에 속하였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사찰령을 반포하여 전국의 사찰을 30개 본산의 관할에 둠에 따라 당시 남원 지역 사찰은 전주 위봉사에 소속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불교조계종은 전국을 24교구로 나누었다. 이후 남원 지역 사찰은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가 되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 사찰 정화를 위한 유시로 촉발된 비구와 대처의 싸움은 1970년 대처 측의 대한불교태고종이 종단 설립 인가를 받음으로써 종식되었다.

현재 남원에는 조계종과 태고종에 속한 사찰들이 많은데, 조계종 소속 사찰이 6개, 태고종 소속 사찰이 5개, 선학원 1개, 모두 12개 사찰이 있다. 대표적인 사찰은 선국사실상사이다.

[유교]

남원의 유교는 조선 초기 향교와 서원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향교에 입학할 수 있는 유생은 한문을 이미 익힌 양반 자제들로 되어 있으나 평민의 자제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향교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의 변란과 사학 교육기관인 서원의 발흥으로 인하여 교육 기능이 점차 쇠퇴해졌다.

조선 중기 이후 성행하게 된 서원은 내부에 문묘의 분위기를 본따 사당을 뒤편에 짓고 유교 명현들을 향사하면서, 앞면에는 교실을 지어 유교 학문을 강의하였다. 이 무렵 남원 지역에는 창주서원·노봉서원·용계서원·용암서원·유천서원·용장서원·풍계서원·호암서원·영천서원 등 서원이 있었고, 사우로도 용장사·충령사·정충사·고암사·풍양사·구천사·십노사 등이 있다.

남원 유교의 상징으로 들 수 있는 곳이 광한루이다. 황희(黃喜)양녕대군 폐출 불가를 주장하다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남원으로 내려온 것은 1419년(세종 원년)의 일이다. 황희남원부 남쪽 2리쯤 떨어진 곳이 지대가 높고 평평하고 넓은 곳에 조그마한 누각을 지어 놓고 이름을 광통루(廣通樓)라고 했다.

조선의 명현인 정인지김종직, 정철 등이 남원에 와서 유숙하면서 시문을 남겨 광한루에 올리기도 하였으니, 이곳이야말로 남원 지역이 유교와 풍류의 고장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곳이다.

남원 지역의 유학자들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 소산복은 머리가 명석하여 사서오경과 제자백가에 통달하였고, 특히 천문과 산학(算學)에 조예가 깊었다. 소산복김천일 장군이 진주에서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통탄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고는 덕과면 만도리 향리에 집을 짓고 편액을 ‘문류정(門柳亭)’이라 하고, 당시의 선비들인 민여주·오정길·김선·이점·안창국·최행·양명원·안극충 등과 어울려 유학과 학문을 논하며 만년을 보냈다.

남원의 유교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침체되었는데, 독립 이후에 활동을 재개해서 여러 조직을 만들었다. 유도회 남원지부는 1948년 4월에 창립되었고, 여성유도회 남원지부와 청년유도회 남원지부는 1993년에 창립되었다.

[기독교]

1. 천주교

전라도 지역은 조선 후기 천주교 탄압 사건인 교난(敎難)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즉 1801년 신유교난(辛酉敎難), 1839년 기해교난(己亥敎難), 1846년 병오교난(丙午敎難), 1866년 병인교난(丙寅敎難) 등 대규모 탄압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한양과 경기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은 관헌들의 추적을 피하여 상대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에게 관대했던 전라도 지역의 깊은 산간 지대로 피신하였다.

또한, 구한말 치안이 불안정하여 선교사들에 대한 농민군과 자위단의 박해가 심해지자 선교사들은 그들의 위협을 피해 장수와 진안 등지로 와서 활동했으며 그 중에는 남원 지방에 거주하는 천주교인들도 있었다.

남원 지역에 최초로 천주교가 포교된 것은 1934년 일제강점기였는데, 당시 남원읍 축항리에 남원공소가 설치되었다. 1935년 6월 12일 남원공소를 남원천주교회로 승격하였다. 이 해 8월 20일 초대 신부로 석 바오로가 부임하였다. 이로부터 남원천주교회는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져 상당수의 교인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37년 포교의 일환으로 교회 안에 사립 국민학교를 설립하고 학생들을 모집,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종교 탄압으로 교세는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8·15해방 후에야 남원천주교회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1958년 9월 새로 성당을 준공하였고, 1966년에는 교회 안에 소화유치원을 부설하여 남원 지역의 유아 교육의 효시가 되었다. 그 뒤 1970년에는 교인들의 경제를 도울 목적으로 신용조합을 설립 운영하게 되었다. 2007년 현재 전주 교구 소속으로 쌍교동 성당도통동 성당이 남원시를 두 개의 관할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 전교를 하며 교인들의 모임을 이루고 있다.

2. 개신교

장로회 기록에 의하면, 1908년 남원읍교회(현 남원제일교회)가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 시초는 1904년 조원집이 열정적으로 전도함으로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원집은 딸을 데리고 당시 시장터였던 현 광한루(廣寒樓)에서 노방 전도를 하면서 남원읍 지역의 최초 교회인 남원읍교회의 초석을 세웠다.

하지만 조원집이 천민 출신임이 알려져 결국 남원읍교회를 떠나게 되자 1905년 남원읍교회는 최극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1915년 4월 1일 위인사 선교사가 운봉 지역에 임시 예배처소를 마련하여 예배 모임을 가진 것이 1916년 12월 7일 설립된 운봉교회(예장통합)의 시초가 되었다.

1952년 9월 7일 조요섭 선교사의 지원으로 남원읍 동충리 344번지 제재소 창고를 임대하여 남원동북교회가 설립되면서 남원읍교회가 기독교장로회 소속 남원읍교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남원동북교회로 분리되었다.

이전의 남원읍교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전북노회 소속이었다. 남원노회는 전북노회에서 분립하고 남원·임실·순창 3개 지역을 통합하여 전북남노회라 불러오다가 지역성을 살려 남원노회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6년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소속이 55개 교회로 남원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 다음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16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소속 15개,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소속 11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 7개 등이 활동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6개, 대한예수교장로회(연장) 소속 5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4개, 브니엘총회 소속 4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3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 소속 3개, 그리스도의교회 소속 2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소속 2개,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2개 등이 활동하고 있다.

그 외 1개 교회만 있는 교파로는 고신개혁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여목), 대한예수교장로회(독노회), 대한예수교장로회(연장),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개혁),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중앙) 등이 활동하고 있다.

[신종교]

남원 지역의 신종교는 1860년 동학의 발생을 기점으로 이후 한국인에 의해 새로이 발생한 종교를 의미한다. 남원 지역의 신종교는 동학계, 참물교계의 성덕도, 불교계의 원불교와 대한불교 천태종, 기독교계의 통일교, 그리고 일심교(일명 증산교) 등을 꼽을 수 있다.

동학이 남원 지역에 처음 포교된 것은 1861년이다. 최제우가 남원의 서공서(徐公瑞) 집과 교룡산성 내에 있던 은적암에 머물면서 동학을 포교하였다. 이때 포교로 남원 지역에서는 한때 수만의 동학 교인이 있었다. 그러나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운봉여원치에서 전투를 치른 이래 동학은 남원 지역에서 점점 쇠퇴하였다. 현재 남원 지역에는 동학 교인은 거의 없다.

참물교계는 제주 출신 김봉남(金奉南)이 창교한 봉남교(奉南敎)에서 분파된 모든 교단과 그 분파 교단에서 새로 분파된 모든 교단을 총칭한 것이다. 성덕도(聖德道)는 봉남교단을 창교한 김봉남의 제자 김옥재(金沃載)에 의해 봉남교에서 분파 창교되었다. 1955년 장대철에 의해 성덕도교화원 남원교구가 설립되었다. 성덕도교화원 남원교구는 전북 지역의 교화원을 관할하는 교구로 되어 있다. 현재 교인의 수는 확실하지 않다.

원불교는 1916년 박중빈에 의해서 개창되었다. 남원 지역에는 1930년 아영에 포교소가 설치된 것이 최초이며, 1934년 남원시(당시는 읍)에 포교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원 지역 내에 9개 교당이 설립되었다. 또한 각종 단체를 통해 다양한 사회 봉사 활동을 펼치는 등 남원 지역의 신종교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한불교 천태종은 박준동(朴準東)이 창교하였다. 대한불교 천태종이 전라북도 지역에 포교되기 시작한 것은 교조 박준동이 도량을 처음으로 개설할 때부터였다. 박준동의 교단 창립 때 참여한 대부분이 증산교에서 이탈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남원시 금동에 구인사 남원지회를 두고 있다.

1954년 문선명에 의해 창교된 통일교가 남원 지역에 유입된 시기는 1960년대 초일 것으로 추정될 뿐이며 그 뒤의 현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 수가 없다. 현재 통일교는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1개 교회가 있다.

일심교(一心敎, 일명 甑山敎)가 신흥 교단으로 만들어진 것은 1943년 교조 강대성(姜大成)이 순창 회문산 도령동에 서당을 차리고 몽학훈도를 하면서부터이다. 현재 일심교는 교룡산에 3개파가 본부를 두고 있으며, 남원시 도통동에 본부를 두고 있는 남원파가 있고, 지리산 청학동, 회문산, 변산 일대와 전라남도 순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몇 개의 교파가 있다.

[참고문헌]
  • 『남원지』(남원지편찬위원회, 1992)
  • 『남원향교지』(남원향교지편찬위원회, 1995)
  • 전북애향운동본부, 『광복50년 전북발전사』(탐진출판사, 1996)
  • 전라북도 전통사찰(http://blog.naver.com/)
  • 춘향골남원-춘향골전통문화시스템(http://www.chunhyang.or.kr)
  • 남원시청(http://www.namwon.jeonbuk.kr)
  • 남원닷컴(http://www.namwon.net)
  •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http://www.koreatemple.net)
  • 사이버유교박물관(http://www.yugyo.org/)
  • 문화재정보센터(http://info.cha.go.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12.01 남원동북교회 분리 시기 수정 1957년 9월 7일 -> 1952년 9월 7일
이용자 의견
김** 남원읍교회에서 동북교회가 분리된 시점은 1957년 9월 7일이 아니라 1952년 9월 7일입니다. 아마도 52년을 57년으로 잘못 기록한 것 같습니다.
  • 답변
  • 디지털남원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소중한 의견을 검토하여 해당 오류를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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