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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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茂朱三柳里立石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훈 |
현 소재지 | 무주 삼유리 입석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성도 마을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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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입석 |
크기(높이,둘레) | 262㎝[높이]|61㎝[너비]|44㎝[폭]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성도 마을 입구에 있는 선돌.
[개설]
무주 삼유리 입석은 길쭉하고 커다란 바위를 약간만 다듬어서 액막이를 위해 세워 놓은 민간 신앙 유적이다. 입석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그 기능을 담당하는데 1기나 2기가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마을 수호, 생산과 풍요, 액막이[기자, 성 신앙], 화재막이, 풍수 비보적 역할을 한다.
[위치]
무주 삼유리 입석은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성도 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형태]
무주 삼유리 입석은 남근 형태를 하고 있다. 큰 비석 사이에 2기의 남근형 선돌이 있다. 큰 비석은 높이 262㎝, 너비 61㎝, 폭이 44㎝ 정도이며, 정면에는 ‘자손만대부귀□송(子孫萬代富貴□宋)’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좌측에 위치한 남근형 선돌이 우측에 있는 것보다 조금 크다.
[의례]
무주 삼유리 입석은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일제 강점기에 자손들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웠다고 전한다.
[현황]
무주 삼유리 입석은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것으로 기자 신앙을 대상으로 모셔진 것으로 그 의의가 있다.
[의의와 평가]
삼유리 입석은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것으로 기자신앙을 대상으로 모셔진 것으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