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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본명은 강윤수(姜尹秀)이며, 강무경(姜武京)으로도 쓴다. 강무경(姜武景)[1878~1910]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출생하였다. 원래 필묵(筆墨)을 주로 취급하던 상인이었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처지를 통탄하고 또 걱정하던 의로운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와중 전라남도 함평 지역에서 활동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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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열녀. 구길생(具吉生)의 처 양씨는 집이 너무도 가난하여 남편이 죽었을 때 거적으로 남편을 싸서 장사를 지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가난 속에서도 병든 남편과 시부모와 시동생들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보살폈다.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침저녁으로 남편의 제사상에 전(奠)을 올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가슴을 치고 슬피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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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희생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중추부사(嘉善大夫中樞府事)를 지낸 김재선(金在善)이다. 부인은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김국희(金國禧)[1773~?]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서 태어났으며, 정조[재위 1776~1800] 때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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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금녕(金寧). 자는 영재(永載), 호는 은천(隱川).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김달규(金達圭)[1841~1936]는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굴천 마을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온순하고 맑아 친척들이나 이웃을 대할 때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서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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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의병장. 김동신(金東臣)[1871~1933]의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庵)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고종(高宗) 때 무과에 급제한 후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祕書丞)을 지냈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문태서(文泰瑞), 신명선(申明善), 박춘실(朴春實) 등과 함께 구국 항쟁의 대열에 나서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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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자선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재(聖哉), 호는 덕암(德庵). 할아버지는 증통정대부 호조 참의(贈通政大夫戶曹參議)인 일제(一濟) 김국윤(金國允)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의금부 지사(嘉善大夫戶曹參判義禁府知事)에 추증(追贈)된 김창신(金昌信)이다. 김병두(金炳斗)[1843~1923]는 1843년(헌종 9) 전라북도 무주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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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박권(朴權)[1747~1822]은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운곡(雲谷)으로, 1747년(영조 23)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다. 40세 때인 1786년(정조 10)에 소과(小科)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대과 급제를 위한 공부에 전념하였다. 박권은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효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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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삼(汝三), 호는 운촌(雲村). 형은 성균 진사(成均進士) 박권(朴權)이다. 박삼(朴森)[1761~1832]은 1761년(영조 37)에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으며, 형 박권과 함께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였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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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달성(達城). 귀계(龜溪) 서침(徐沈)의 후손이다. 서침은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전라도 처치사(全羅道處置使)를 지낸 인물로, 조선 세종 조에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와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냈다. 전라도 무주 출신인 서인주(徐仁周)는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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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송계원(宋桂元)[1731~1792]은 1731년(영조 7)에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서 태어났으며,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섬겨, 주변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효자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특히 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병중에 있을 때에 온갖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보살핀 일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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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화중(和中)이다. 유경제(柳景堤)[1802~1856]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친부모의 품을 떠나 작은아버지의 양자(養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가(養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친가(親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언제나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특히 양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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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명국(鳴國)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다. 유봉증(柳鳳增)[1830~1856]은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48년(현종 14)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1856년(철종 7)에 향년(享年) 27세로 사망하였다. 유봉증은 그의 동생인 유홍증(柳鴻增)과 함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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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익녀(翼汝)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고, 큰형은 유봉증(柳鳳增), 작은형은 유학증(柳鶴增)이다. 유홍증(柳鴻增)[1850~1879]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형들을 존경하여, 형들을 대할 때 언제나 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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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진(君珍), 호(號)는 두촌(斗村). 형은 이만번(李晩蕃)이다. 이만경(李晩景)[1691~1776]은 1691년(숙종 17)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태어났다. 이만경은 성품이 올바르고 학문도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 사사로운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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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의 애국지사이자 교육자. 이시발(李時發)[1865~1934]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간설(艮雪)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고종 3) 2월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무주에 들렀을 때 항일 의사(抗日義士) 유완무(柳完茂)와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김구를 보호하였다. 당시는 김구가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죄로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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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열녀. 이이옥(李以沃)의 처 의성 정씨[1863~?]는 1863년(고종 1) 정재남(丁在南)의 딸로 태어났다. 천성(天性)이 단정(端正)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거지에 있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이이옥과 혼인한 후에는 아녀자로서의 도리를 반드시 지켰다. 그런데 의성정씨가 이이옥과 혼인했을 때 시부모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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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부. 이철구(李喆龜)의 처 옥산 장씨는 이철구와 결혼한 후 홀로 된 시할아버지와 역시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여기에 또 남편마저 병에 걸려 몸이 편치 못하였다. 게다가 남편의 병은 해가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렇지만 시할아버지가 남편의 병에 대해 묻거든 언제나 "차도가 있다. 곧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시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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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은 승대(承垈), 호는 송포(松圃). 아버지는 효행과 학문으로 이름이 높고, 무주 죽림사(竹林祠)에 위패가 봉안된 최활(崔活)이다. 최익붕(崔翼鵬)[1810~1872]은 1810년(순조 10)에 태어났다. 풍채도 좋고 재주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효심이 깊었다. 최익붕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있자, 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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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효부. 황재성(黃在成)의 처 강릉유씨[1855~1932]는 1855년(철종 6)에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태어났다. 17세 때에 황재성과 혼례를 올렸으며, 당시 시댁에는 90세를 넘긴 시부모가 있어, 시부모를 언제나 친부모처럼 지극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재성의 처 강릉유씨야말로 진정한 효부(孝婦)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