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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705
한자 崔翼鵬
영어공식명칭 Choe Ikbung
이칭/별칭 송포(松圃),승대(承垈)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10년연표보기 - 최익붕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 최익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0년 1월 - 최익붕 효자비 건립
사당|배향지 최익붕 효자비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전주(全州)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은 승대(承垈), 호는 송포(松圃). 아버지는 효행과 학문으로 이름이 높고, 무주 죽림사(竹林祠)에 위패가 봉안된 최활(崔活)이다.

[활동 사항]

최익붕(崔翼鵬)[1810~1872]은 1810년(순조 10)에 태어났다. 풍채도 좋고 재주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효심이 깊었다. 최익붕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있자, 병세를 확인하기 위하여 직접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았으며, 아버지의 숨이 끊어지려 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목숨을 며칠 더 연장시켰다. 아버지가 돌아간 후에는 장례를 치르는 데 있어 단 하나도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최익붕의 효행은 최익붕과 같은 시기에 무주에 살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와 후대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최익붕은 1872년(고종 9) 향년 63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익붕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최익붕이야말로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라고 하였으며, 그의 효행을 기릴 수 있는 비석이 반드시 건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970년 1월에 이르러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최익붕의 효자비를 건립하였다. 최익붕 효자비는 현재 무풍 중학교 앞 도로변에 있다. 비문을 쓴 하천수(河千秀)는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壽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무산사 시집(茂山社詩集)』을 펴낸 인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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