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2018
한자 雲圃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백안1안길 5[마흘리 19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6년연표보기 - 운포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 - 운포재 중수
현 소재지 운포재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백안1안길 5[마흘리 196]지도보기
성격 강학소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운포재]|3칸[돈우정]
측면 칸수 3칸[운포재]|2칸[돈우정]
소유자 청주석씨 밀양문중
관리자 청주석씨 밀양문중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에 있는 충주석씨 입향조를 기리기 위한 일제강점기 강학소.

[개설]

운포재(雲圃齋)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의 입향조 석여신(石汝信)[1565~1651]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충주석씨 후손들이 1916년 백안동에 중건한 집이다. ‘운포’는 석여신의 호이다. 석여신은 시조 석린(石鄰)의 10세손으로 참의공파 파조이고 석성옥(石成玉)의 고손자이다. 석성옥은 한강 정구[1543~1620]의 문인으로 1506년(연산군 12) 이조참의를 과감히 내던지고 밀양 무안면 둔지리[현 고라리]로 이거하여 중산리 청천동에서 은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석여신은 임진왜란 때 호서 내포로 피난하였다가 6년 만에 환향한 뒤 고라리에서 중산을 거쳐 마의례[현 마흘리]로 이거하였고, 아들 석건축은 다시 백안동으로 이사하여 세거지를 확장하였다. 석여신은 백안동에 건물을 짓고 지내며 1610년 모함당한 스승을 신원하기 위하여 상소를 올렸다. 예림서원의 유림이 신산서원에 글을 보내어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의 향례를 권하자 참여하였으며, 조경암(釣耕庵) 장문익(蔣文益)과 시로 교유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퇴락하여 없어질 지경이 되자 1916년 후손 석치성, 석치환, 석치주, 석세일 등이 조상의 학문을 계승하고자 서재의 옛 터에 다시 몇 칸의 집을 지었다. 건립한 지 10년이 지난 1926년 6월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이 기문을 지었다. 운포재 동쪽에는 후손 석치성(石致聖)이 선친 석기홍(石基洪)의 자취를 계승하기 위하여 1928년 중건한 돈우정(敦友亭)이 곁채로 딸려 있다. 재실 정문 이름은 ‘숭의문(崇義門)’이다.

[위치]

운포재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 196번지에 있다. 마흘리 저수지 아래 백안동 마을회관을 가기 전 초입에 석건축의 5세손 석이찬[1774~1831]의 유덕을 기리는 월담재(月潭齋)가 있다. 월담재를 20미터 지나 오른쪽 방향으로 꺾어 올라가면 운포재가 나온다.

[변천]

운포재는 석여신이 임진왜란 후 지은 건물이 오랜 세월로 퇴락하자 1916년 건물을 헐고 새로 중건하였다. 이후 2004년 4월 중수하였다.

[형태]

운포재는 팔작지붕의 본채 운포재와 아래채 돈우정이 ‘⌐’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운포재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돈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운포재는 2004년 중수하여 건물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운포재를 통하여 충주석씨의 경상남도 밀양 입촌 내력과 지역 내 사족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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