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283
한자 密陽 四溟大師 生家址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고라리 248]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윤여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1992년 10월연표보기 -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544년 - 사명대사 출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10년 - 사명대사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고라리 248]지도보기
성격 가옥
소유자 밀양시
관리자 밀양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 있는 밀양 출신 승려 사명대사의 생가터.

[개설]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密梁四溟大師生家址)사명대사(泗溟大師)[1544~1610]가 출생한 생가터로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 있다. 사명대사는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법명은 유정(惟政)이고, 속명은 임응규(任應奎)이며 호가 사명당(四溟堂)이다. 1544년 진사 임수성(林守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3세 때 가출하여 직지사 신묵(信默)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1593년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되었던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는 사명대사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의 벼슬을 내렸으며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그 후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세상을 떠났다.

[위치]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248번지에 있다. 생가의 원래 위치는 명확하지 않았으나 일대의 지표 조사 결과 기와 파편과 생활용품의 파편, 건축물과 담장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하였다. 또한 사명대사의 어린 시절 생활에 관한 기록을 참고하면 집 가까이에 연못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현재 위치를 생가터로 추정하고 복원이 이루어졌다.

[변천]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소실되었다가 2006년 사명대사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현 위치에 생가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는 1,121㎡에 이른다. ‘송운대사구택(松雲大師舊宅)’이라는 현판이 걸린 대문채를 지나가면 사명대사가 거처하던 사랑채인 사명당과 사명대사가 태어나서 자란 곳인 육영당 등이 복원되어 있다.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 옆에는 사명대사를 모신 사당인 숙청사가 있고, 숙청사 옆에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현황]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는 1992년 10월 21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밀양시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수변광장, 상징광장, 사명대사기념관, 추모마당, 동상 등으로 구성된 사명대사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사명대사가 고향으로 돌아와 쉬던 바위가 아직 남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임진왜란 당시 의승장으로 활약하였던 사명대사의 생가를 문헌 자료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위치를 비정하고 역사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복원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경남관광 길잡이(https://tour.gyeongnam.go.kr)
  • 대한민국구석구석(https://korean.visitkorea.or.kr)
  • 밀양시청(https://www.mir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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